신발 뒤축이 빠지자 “여보”를 다급히 외쳤던 윤정희

입력
2023.02.03 07:00
12면

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지난달 79세로 세상을 떠난 배우 윤정희는 1960~70년대가 전성기였다. 문희(76), 고 남정임(1945~1992)과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한국 영화 흥행을 이끌었다. 세 배우의 경쟁은 여자배우의 위상을 올려놓았다.

문희는 단정하고 선한 역을 주로 맡았다. 남정임은 발랄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윤정희는 지적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다. 선한 역과 악한 역을 두루 연기했다. 고인은 출연작 280편을 남겼다. 주연급 배우들이 1년에 30편 넘게 출연하던 시절에 전성기였으니 가능한 편수다. 1960년대 배우들은 당일 어떤 영화를 촬영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촬영장 3, 4곳을 돌고는 했다 한다.

고인은 수많은 영화를 남겼으나 내가 본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중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와 김수용 감독의 ‘야행’(1977)이 인상적이었다. 고인은 ‘내시’에서 조선 명종의 후궁이 된 자옥을 연기했다. 자옥은 이미 정을 통한 연인 정호(강신성일)가 있다. 정호는 내시가 돼 궁에서 자옥을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는 궁중암투를 배경으로 여러 파격적인 관계를 펼친다. 자옥은 궁중에서 살아남는 동시에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선하다 표현할 수 없고, 악하다 수식할 수 없는 인물이다. 고인은 24세 젊은 배우의 것이라 믿기 어려운 연기로 자옥을 그려낸다.

‘야행’은 고인의 도회적인 면모가 두드러졌던 영화로 기억한다. 고인은 서울에 사는 은행원 현주를 연기했다. 현주는 욕망에 충실하다. 어렸을 적 얻은 마음의 상처가 작용한 듯한데, 영화는 불분명하게 서술한다. 검열로 50곳가량이 잘려나간 이유가 크다. 영화는 급속한 산업화 속 도시인들의 고독과 단절을 묘사한다. 고인은 얼굴만으로도 시대상을 표현하기 제격이다.

고인의 명성을 새삼 확인한 영화는 ‘시’(2010)다. ‘만무방’(1994) 이후 1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고인은 1973년 프랑스 유학을 가 유명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1976년 결혼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계속 살았다. 프랑스 지인들은 그가 배우였다고 말하면 믿는 듯 마는 듯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 촬영을 마친 사실을 안 후에는 “칸! 칸! 칸!”을 연호했다고. ‘시’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시’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위해 고인을 만났다. 그는 화장과 의상 등은 본인이 챙긴다고 했다. 신인배우 시절부터 익숙해진 일이라고 설명했으나 화려한 이력과 다른 면모라 조금 놀랐다.

2010년 칸영화제 당시 ‘시’는 황금종려상(최고상) 수상 유력 후보로 꼽혔다. 현지 언론의 호평은 기대를 높이기 충분했다. 이창동 감독은 한 지역신문의 보도를 언급하며 ‘내 마음속 황금종려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결과는 각본상 수상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무대에 올라간 이 감독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후 한국 기자들을 위한 간이 기자회견이 급히 마련됐다. 야외였는데 기자들이 빙 둘러싸는 식으로 모였다. 기대가 컸었던 만큼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고인이 기자들 사이를 가로질러 이 감독 쪽으로 향하는데 그의 신발 한쪽 뒤축이 빠졌다. 침울한 분위기 속 낭패스러운 상황. 주변사람들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고인은 제자리에 멈춰 “여보”를 다급하게 외쳤다. 어디선가 남편 백건우가 쏜살같이 나타나더니 ‘응급조치’를 취했다. 임기응변으로라도 배우의 품격을 지켜내려 했던 고인의 면모와, 부부의 평소 관계를 압축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과 고인은 서로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이 감독은 자신 때문에 고인이 여자배우상을 받지 못했다고 자책했고, 고인은 자신이 아니었으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내 탓’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촬영현장은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고인은 유작이 된 ‘시’에서 66세 여인 양미자(고인의 본명은 손미자다)를 연기했다. 미자는 시 창작 교실을 다닌다. 강사인 시인 김용택은 수강생들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해보라 한다. 미자는 어렸을 적 언니가 “미자야, 이리 와”라고 다정하게 불렀던 때를 꼽는다. “내가 정말 이쁘구나, 언니가 정말 나를 예뻐하는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고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고인이 그 추억만을 안고선 잠들었기를 바란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