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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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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전투표소 불법카메라 공범 9명 추가 확인

경찰이 4·10 총선 사전투표소에 불법카메라를 설치한 유튜버를 도운 공범 9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경찰은 이들의 공모 여부를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전공의 사직 지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집단행동을 부추긴 게시물을 올린 23명을 추가로 특정해 의사 3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사전투표소 불법카메라 설치 관련 유튜버 등 3명을 구속 송치하고 공범 9명의 사건 관련성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총선 사전투표소에 카메라를 몰래 설치한 40대 유튜버와 공범 등 3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및 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카메라 설치 장소와 방법, 회수 등의 범행을 공모한 뒤 투표소 40여 곳에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포렌식 과정에서 9명이 더 범행에 관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금전이나 차량을 지원한다던가 (범행을) 지지하고 권유하는 등 여러 공모 관계가 있다"면서 "인천과 울산 등에서 카메라를 회수하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의료계 집단행동과 관련해서도 온라인상에 게시물을 올린 23명의 신원을 추가로 확인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앞서 집단사직 전 전공의 행동지침을 게시한 군의관 2명과 수련병원 파견 공보의 명단을 유출한 게시자 등 5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3명을 추가로 조사해 의사 신분임을 확인했다"며 "나머지 인원도 순차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사교육 카르텔' 관련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메가스터디에 사외이사로 선임돼 논란이 된 남구준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죄송하고 안타깝다"는 입장을 전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남 전 국수본부장이 '늘 선공후사의 마음으로 경찰 조직과 국민을 먼저 생각해 신중하게 처신해왔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죄송하고, 본인 결정으로 사퇴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친윤 총리·비서실장 하마평에 이재명 "尹, 총선 민심 수용 생각 있나"

고물가 '경제 심판'이 '정권 심판' 불붙였다... 민주당 압승 요인은[총선 개표 분석]

#세월호 참사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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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으로 부르고 색칠로 기억하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슬픈 이름들

경기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은 세월호 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미술관은 화랑호수를 끼고 단원고등학교와 마주한다. 유리창으로 학교의 붉은 벽돌이 보일 정도로 지척이다. 참사 당시 미술관 주차장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고 미술관의 일부 공간은 정부 합동조사 사무실, 세월호 유가족 사무실로 쓰였다. 공공미술관으로서 경기도미술관은 '예술을 통한 위로'를 해왔다. 2016년 '사월의 동행' 전시, 2021년 '진주 잠수부' 전시에 이어 참사 10주기인 올해는 추념전 '우리가, 바다'를 연다. 이번 전시엔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17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사진작가 황예지(31), 안무가 송주원(51), 조각가 겸 작가 안규철(69)은 이번 전시를 위해 미술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을 내놨다. 이들을 12일 경기도미술관에서 만났다. 황예지 작가는 안산시 상록중학교 졸업생이다. 사춘기 시절 "되바라진 학생"이었다는 그에겐 "서툴고 방황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명단에 그 선생님의 이름이 있었다. 단원고 발령 한 달 만에 참변을 당한 고(故) 고창석 교사다. "선생님에 대한 증언들을 보면 한결같이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구조하려고 했대요. 참 선생님답다 싶었어요. 언젠가 선생님께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할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10주기 전시를 통해 그럴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황 작가의 출품작 '안개가 걷히면'은 각기 다른 시기에 찍은 세월호 관련 사진 12점을 일렬로 배치한 것이다. 그는 "'세월호 세대'가 '이태원 세대'로 이어지면서 어린 친구들이 국가와 재난을 부정적으로 감각하기 쉬운데, 이번 전시가 안전에 대해 확장된 경험을 갖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가운데 스피커에선 세월호 희생자 304명이 천천히 호명되는 목소리가 나오고, 스피커 앞 스크린에는 무용수가 그 이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영상이 흐른다. 안무가이자 댄스필름 감독인 송주원 작가의 영상 작품 '내 이름을 불러줘'이다. 출품작 중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희생자를 추도하고 기리는 작품이다. 송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몸으로 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자음 'ㅇ'은 어깨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손가락 2개를 들어 모음 'ㅣ'를 써서 '이'라는 성을 몸으로 부른다. 몸짓으로 304명을 부르는 데 1시간 35분이 걸렸다. "몸선이나 춤이 이름을 가리지 않도록 동작을 빼려 노력했습니다. 작품의 목적은 희생자 한 분 한 분을 세상에 다시 호명하는 데에 있으니까요." 조각, 미술, 철학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해온 안규철 작가는 색칠놀이 형식의 관객참여형 작품 '내 마음의 수평선'을 내놨다. 전시실 마지막 공간의 넓은 벽을 채운 가로 700㎝, 세로 210㎝ 크기의 알루미늄 판에 촘촘한 밑그림과 숫자가 적혀 있다. 그 옆에 가로·세로 7㎝의 조각 패널들이 놓여 있는데, 관객들이 물감과 유성마커로 패널을 색칠하고 나면 모자이크 하듯 패널을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패널 3,000개가 모여 완성하는 것은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다. 패널 하나하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적 결과물이지만, 전부 모으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과정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과 닮았다고 안 작가는 말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간직하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전국이 노란 물결... "잊지 말아요, 세월호 10년"

내팽개쳐진 세월호 10주기 추모 현수막…훼손 '공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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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긴급 소집… 유엔 총장 "최대한 자제할 시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4일 오후 4시(현지시간)부터 긴급회의를 소집해 전날 이뤄진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당사국인 이란과 이스라엘 대사도 참석해 설전을 벌였다.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중동은 벼랑 끝에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파괴적인 전면전의 실제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테흐스 총장은 "지금은 (각 국이) 진정하고 긴장을 완화할 시기이며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시기"라고 호소했다. 또 그는 "유엔 헌장은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반해 무력을 사용하거나 유엔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음을 회원국에 상기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벼랑에서 물러설 때"라며 "중동의 여러 전선에서 대규모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행동도 피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동 지역은 물론 세계 역시 더 이상의 전쟁은 감당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확전 우려에 양국의 자제를 촉구하는 가운데서도 이스라엘과 이란은 한 치도 양보 없는 설전을 주고 받았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지 주유엔 이란대사는 이스라엘 공격에 대해 "국제법에 따른 자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나오는 보복 공격 주장에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동맹인 미국의 개입은 차단하려는 의도도 내비췄다. 그는 "이스라엘 정권의 추가적인 군사적 도발에 대해 경고하고자 한다"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이스라엘) 군사 목표물을 표적으로 한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을 미군이 요격했음에도 우리는 이에 대해 자제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이에 맞서 "오늘날 이란 정권은 나치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에르단 대사는 "이란의 군대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혁명수비대(IRGC), 그 외 야만적인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를 포함한다"며 "이란은 더는 대리자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보리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면서 "이란의 테러 행위를 비난하고 (위반 시 제재를 부활하는) 스냅백 메커니즘을 작동해 이란 IRGC를 테러단체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이날 회의에서 이란의 보복공격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추가 확전을 경계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전날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격 직후 이스라엘의 요청으로 소집됐다. 이란은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에 걸쳐 이스라엘에 탄도·순항미사일 수백기를 발사하고 무인기(드론) 공격도 가했다. 이달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IRGC 고위 지휘관을 제거한 지 12일 만에 이뤄진 무력 보복이었다.

"이스라엘 전시내각, '이란 보복 공격' 시기·방식에 이견"

'아이언돔'이 뭐길래…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 99% 막아냈다"

#22대 국회 화제의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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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아 "친명은 기득권이 만든 프레임… 이재명에게도 직언할 것"[인터뷰]

대장동 변호사. 김동아 서울 서대문구갑 당선자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김 당선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정무조정실장을 변호했다. 그래서 정치에 출사표를 던지는 순간부터 총선에서 당선되기까지 대장동 변호 이력으로 더 유명세를 치렀다.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이 수식어는 22대 국회 내내 그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당선자는 1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대장동 변호사 타이틀은 제게 약도, 독도 아니다"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향후 제 의정활동을 통해서 능력과 실력으로 수많은 민주당 변호사 중에서 대장동 사건을 맡게 된 이유를 보여주면 족할 문제"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친이재명계로 분류되지만 "당에 쓴소리도 할 수 있고 이재명 대표에게도 거리낌 없이 직언할 수 있다. 다만, 언론에 주목받겠다고 쓴소리하면서 자기정치를 하는 기성 정치인 행태는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선 소감은. "늦게 선거운동을 시작했는데 좋은 선택을 받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젊고 새로운 사람에 대한 지역의 열망이 컸던 것 같다. 민심의 무서움을 많이 느꼈다.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면서 서대문의 발전에 앞장서겠다." -민주당 압승의 원인은.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사건, 김건희 여사 수사 등으로 야당 지지자들이 똘똘 뭉친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고물가와 고금리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는 모습에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 -막말, 부동산 논란 등 민주당의 후보 리스크가 선거 막판 변수가 됐다는 평가가 있다. "후보자 리스크라기보다는 언론 리스크였다. 후보자들의 발언이나 과거 행적이 적절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힘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발언한 후보도 있었다."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민생 의제를 주도하거나 개혁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는데.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거부권 행사로 막혔던 측면이 제일 크다. 다만 민주당이 여당일 때 당선된 의원들께서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22대 국회는 야당으로서 정부 실정을 좀 더 적극 지적하고 대안입법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부족했나. "내부적으로 갈등을 유발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대응하는 데 많이 힘을 싣지 못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지적이 많은데.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총선 결과를 보면 오히려 민주당의 개혁공천이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어떤 민주당 출신 평론가는 '친명횡재'로 민주당이 총선에서 폭망할 것으로 꾸준히 전망했는데, 민심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는 분이 언론에서 계속 스피커로 나와서 안타깝다." -출마 선언은 경기 평택갑, 이후 서울 서대문갑으로 지역을 옮겼고, 청년 경선 과정에서도 뒤늦게 후보가 돼 특혜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데.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지만 정치인에게 당연히 따라올 수 있는 잡음이라 생각한다. 향후 의정활동을 통해 국민들과 주민들께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 김 당선자는 서대문갑 청년 경선에서 최종 3인 결선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성치훈 예비후보가 과거 미투 피해자 2차 가해 발언 논란으로 중도에 탈락해 극적으로 최종 후보에 낙점됐다. -정치인 이재명을 평가한다면. "예전에는 일 잘하는 행정가에다가 사이다 발언으로 속 시원한 정치인이었다면, 지금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거목이 됐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어떻게 보나. "윤 대통령과 검찰이 만든 조작 수사에 의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사법리스크라는 부분은 통상적인 형사사법의 범위를 넘어섰다. 결국 국민들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데. "친명이란 단어는 기득권이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개인적으로 이 대표를 원래부터 알고 있던 것도 아니고, 함께한 시간도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친김대중계나 친노무현계, 친문재인계도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그 사람들이 국민들의 최종 선택을 받았고 당시 시대정신에 맞았다. 친명도 대한민국과 민주당에 대한 시대적 과제를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다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팬덤정치에 대한 생각은. "민주당 당원들이 21대 총선까진 거의 친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친명이 된 것을 보면 당원들은 특정 개인의 팬덤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당 윤종오 "소수정당 기회 준 울산시민의 정치정서 전국 확대돼야" [인터뷰]

김재섭 "정부에 쓴소리 더 했어야... 이준석과 개혁경쟁 할 것"[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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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탓이 아냐" 아내의 말에 남편은 10년만에 울음을 터뜨렸다

[산 자들의 10년]<2> 사라진 소년 삼일마트 주인 부부, 은인숙·강병길이 버틴 10년 야무진 성격의 삼일마트 주인 은인숙은 셈이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리 세도 두 보루가 모자랐다. 찜찜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아들 강승묵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뉴스에 흉흉한 사건이 많이 보도되던 때라 불안감이 엄습했다. "엄마, 저 지금 집에 들어가고 있어요." 아들의 밝은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두 달 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 소식 들었어? 마트집 아들 실종됐대." 해 질 녘까지 꼬마들이 뛰어놀고, 이웃끼리 서로 자녀를 봐주곤 하는 안전한 안산 월피동에서 아이가 없어지다니. 더구나 초등학교 후문의 삼일마트는 이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집 아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마트는 종일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셔터에 색색의 메모가 붙기 시작했다. 승묵이는 '마트집 아들'로 불렸다. 말을 해본 적은 없어도 오가며 본 까닭에 얼굴을 기억하는 주민이 많았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렴" "오빠, 꼭 돌아와. 슈퍼에서 기다릴게" "살아 돌아와서 웃는 얼굴 보여줘. 동네 아줌마가" 간절한 마음을 옮겨 적은 편지와 쪽지들은 셔터 주변의 천막과 가로수에까지 빼곡히 붙었다. 일주일 후. 승묵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돌았다. 사람들은 한달음에 삼일마트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트집 부부와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민들에게 보내는 답장이 셔터에 붙어 있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셨는데 승묵군은 더 이상 춥지도, 무섭지도 않은 곳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지만 기억하겠습니다. 응원해 주시고 걱정해 주신 주민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동네 골목을 환히 비췄던 삼일마트는 그렇게 문을 닫았다. "아빠, 엄마 어떻게 만났어?" 딸 민정의 말에 강병길은 직접 기른 야콘을 마저 깎아 접시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병길의 손은 유독 새카맣고 거칠었다. 하얗던 손이 귀농 6년 만에 변했다. "뿌리가 깊어서 캐기 힘들었는데… 그래도 민정아, 먹을 만하면 하나 더 심을까? 변비엔 이게 최고래." 애써 딴소리를 했지만, 병길은 아내와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렸다. 집안 어른들 성화에 못 이겨 선을 보다가 운명처럼 인숙을 만났다. 민망해 어디다 한번 해본 적 없는 말이지만, 인숙의 웃는 얼굴에 첫눈에 반했다. 2년간의 연애는 순탄치 않았다. 인숙의 집안은 두 사람의 궁합이 나쁘다며 반대했다. 이후 인숙이 부모 말을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소식이 끊겼다. 이별 후 병길이 식사를 못 해 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어느 날, 인숙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당신 살려주려고 왔어요." 병길은 그날 다짐했다. 누구보다 든든한 가장이 되겠다고. 그때 아빠가 너네 엄마를 잡지 않았더라면…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995년 9월. 부부는 마음에 쏙 드는 신혼집을 찾아냈다. 낮은 연립주택 사이 골목마다 햇살이 잘 드는 동네였다. 작은 집이었지만 아이들을 키우기엔 적당해 보였다. 인숙은 두 해 뒤 3월 맏이인 승묵이를 낳았다. 스물일곱 살 인숙은 서툰 엄마였지만 자신이 낳은 작은 생명이 무척 애틋했다. 아이가 첫 배밀이를 하던 날 찍은 사진 밑에는 "목욕하는 줄도 모르고 잠자는 우리 아기, 어서어서 많이 먹고 건강해져라. 사랑한다"고 적었다. 그 어떤 말보다도 진심이었다. 전업주부였던 인숙이 마트를 차리기로 결심한 것도 아이들 때문이었다. 학비를 조금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장사를 시작한 뒤 늘 잠은 모자랐지만 행복했다. 남편이 출장 간 날이면 가게를 조금 일찍 닫고는 마중 나온 남매 손을 양옆에 잡고 집까지 걸어가던 그 길. 마음이 몹시 꽉 찬 기분이었다. 그해 직전 여름, 한 달 8만 원이던 용돈을 아껴 두 아이가 처음으로 차려준 엄마 생일상엔 '돼지 미역국'이 올랐다. 인근 정육점 사장님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소고기를 살 돈이 모자라 한참을 고민하다 돼지고기를 사 갔다고 했다. 근데 그게 미역국에 넣을 고기였냐고. 인숙은 두 아이를 꼭 껴안고 말했다. "엄마는 지금 너무 행복해." 웃음 많고 쾌활했던 인숙의 머리카락은 그날 이후 하얗게 변해버렸다. 병길은 실종 일주일 만에 발견된 승묵이를 아내에게 보여주기가 주저됐다. 배가 침몰해 물속에 있었던 시간이 길어 얼굴이 많이 상한 탓이다. 병원 직원은 하루빨리 장례일을 잡자고 재촉했다. 병길은 인숙에게 "승묵이를 마지막으로 보겠느냐"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아들의 얼굴을 본 병길은 크게 후회했다. 아이의 얼굴은 하루 새 더 까맣게 변해있었다. 인숙은 그 자리에서 실신했고, 그 이후가 기억나지 않는다. 덕분인지 가끔 꿈에 나오는 승묵이는 여전히 희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인숙을 입원시킨 후 병길이 늦은 밤 들른 삼일마트 주변은 형형색색의 메모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승묵이를 위해 기도해 줬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이내 '이들 모두에게 아들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승묵이가…" 혼잣말로 연습해보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병길은 한참을 꺽꺽 울다 연습장을 찢어 꾹꾹 눌러쓴 글을 셔터에 붙이고 돌아섰다. "승묵이는 더 이상 춥지도 외롭지도 않은 곳으로 떠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승묵이를 보내던 날, 동생에게 부탁해서 그 메모들을 하나하나 포개어 함께 태웠다. '승묵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너를 기다렸단다.' 부부도 처음에는 다른 부모들과 함께 청와대로, 광화문광장으로 다녔다. 삭발한 채 끼니를 때우려고 늦게 식당에 들어섰던 날, 얼굴을 알고 지냈던 동네 엄마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아이 먼저 보내놓고 밥이 넘어가?" "보상금 더 받으려고 저러지?" 그래도 4년을 안산에서 버텼다. 마트 문 닫고 함께 걷던 길, 승묵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좋아하던 피자집을 보고 있으면 아이가 그 안에서 금방이라도 걸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면 승묵이와의 기억이 흐릿해질까 봐 겁이 났다. 병길도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가끔 떠올렸다. 승묵이가 중학교 1학년 무렵, 퇴근길 아빠를 마중 나온 가족과 함께 빌라 단지 옆 가로수 벚꽃을 봤던 늦은 밤이었다. 바쁜 부모 탓에 벚꽃놀이 한번 제대로 못 해본 아이들은 아빠가 벚나무 사이로 목말을 태워주자 너무 신나했다. 몇 해가 지나서도 그날의 기억을 재잘거리곤 했다. 하지만 승묵이와 함께 뛰놀던 그 벚꽃길은 지방선거를 앞둔 2018년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납골당 전면 백지화' '화랑유원지에 세월호 납골당이 웬 말이냐' '세월호 전용 납골당 결사 반대' 해골 그림까지 그려진 현수막은 아빠의 마음을 후벼 팠다. 인숙은 그해 겨울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영하 15도의 날씨에 노숙농성을 했다. 하지만 열릴 줄 모르는 청와대 정문을 보며 '이젠 정말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탓인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아이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에 더 머물면 인숙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병길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를 잃었는데, 아내마저 잃을까 봐 무섭다는 말은 현실이 될까 봐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새로 이사한 동네는 하루 두 번 텅 빈 시내버스가 오가는 외진 곳이었다. 가족은 오래된 흙집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일부러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을 고르고 골랐다. 세 가족이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병길은 건축 일처럼 고되게 몸 쓰는 작업만 골라서 했다.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아들 승묵이를 잃은 뒤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15년이나 했고 사업체도 운영했지만, 그 사건 이후로는 물건도 곧잘 잃어버리고 해야 할 일도 자주 까먹었다. 그나마 몸을 쓰면 잡념이 줄었다. 작은 동네에 젊은 가족이 이사 오니 주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아이는 딸 하나냐'고 물었다. 질문에 나쁜 뜻이 담겨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잃었다'고 답하는 건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원래 둘이었는데 하나를 먼저 보냈어요'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차에는 흔한 노란색 리본 스티커도 붙이지 않았다. 승묵이의 책상은 어쩌다 마을 이장님이 들르더라도 볼 수 없는 옷방 구석에 뒀다. 인숙의 날 선 마음은 가끔 가까운 사람을 향했다. 바로 남편이다. 퇴직금 4,500만 원을 주식으로 잃었을 때도 "괜찮다. 같이 벌면 된다"고 했던 아내였다. 하지만 병길이 승묵이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구조하러 온 해경 지시를 잘 따라서 조심히 나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분노가 치밀었다. 사실 남편은 죽을 힘을 다하고 있었다. 승묵이가 탔던 배를 바닷속에서 인양할 때 근처 무인도에서 산나물을 뜯어 먹고, 텐트에서 쪽잠을 자며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남편이 자신과 딸을 돌보려 뛰어다닌다는 걸 알았지만, 인숙은 병길을 원망했다. 시간이 갈수록 유족들이 모인 밴드방도 조용해졌다. '뭔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이 체념으로 변해갈 무렵 부모들의 부고만 이따금 올라왔다. 50대에 불과한 사람들이었다. 시골에선 창밖 풍경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다. 겨우내 얼고 녹았던 쪽파가 선명한 녹색을 띠어가면 승묵이 생일인 3월이 돌아온다. 승묵이를 바다에서 되찾은 4월 23일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해마다 4월은 승묵이네 가족을 다시 그날로 데려간다. 마치 바로 그날인 듯, 뉴스 화면에는 세월호가 등장한다. 조용했던 유족 밴드가 세월호 관련 행사를 알리느라 연중 가장 분주해지는 시기다. 인숙은 생각했다. 자신처럼 부모 같지 않은 엄마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다른 엄마들은 끼니마다 아이 방에 식사를 차려주거나, 계절이 바뀌면 새 옷도 걸어준다던데 자신은 아이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어른들 말씀처럼 '후생'이 있다면, 신이 있다면 애초에 그런 일은 벌어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승묵이를 낳고 나선 더욱 정성스레 집안 제사며 차례를 도맡아 지냈다. '열 살까지 팥떡을 생일상에 올려야 아이가 건강히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팥단지'도 꼬박꼬박 아이 생일상에 올렸다. 승묵이 얼굴이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던 순간, 영석 엄마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 행사에 나오라는 용건이겠지. 설득해도 나가지 않을 걸 알면서 전화를 했네. 하지만 영석 엄마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때 그 담배, 승묵이 거였다며?" 영석이가 학교에서 담배를 압수당해 불려 간 적이 있는데, 나중에 실토하기로 승묵이가 준 것이라고 했단다. "내가 승묵 엄마 대신 혼났잖아." 인숙은 담배 두 보루가 비었던 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맞아. 승묵이가 그날따라 슈퍼로 엄마를 데리러 오며 큰 가방을 하나 가져왔었지.'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아이를 잃은 두 엄마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애들이 담배 피워본 게 위안이 된다니. 다들 미쳤다고 하겠네. 승묵이가 막 떠났을 때 한 친구가 "승묵이가 장난삼아 담배를 한 대 피워봤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삼일마트를 떠올렸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동네. 가장 행복했지만 가장 슬펐던 동네. 승묵이의 이름은 이을 승(承)에 잠잠할 묵(默)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끈기 있게 이뤄나가라'는 뜻으로 지었지만, 누군가는 부모가 아이의 이름에 묵묵하다는 뜻을 넣어서 잘못됐다고도 했다. 인숙은 그게 아니라고 확인하고 싶었다. "승묵아, 엄마 이제 한번 우물 밖으로 나가볼게." 인숙은 2월 25일부터 3월 16일까지 진행된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 시민행진 전 구간 304㎞를 완주했다. 승묵이가 수학여행을 갔어야 할 제주부터 시신이 돼 돌아온 팽목항, 23개 도시와 지난 6년간 가지 못했던 안산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길을 걸으며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아직도 기억해주는 시민들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됐다. 그 길을 걷는 내내 집 안에 홀로 있을 병길이 떠올랐다. 작업복이 흙투성이가 돼 들어와도 하나도 힘들지 않은 양 씩 웃어 보이는 남편이지만, 인숙은 그가 4월이 다가올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떨면서 엉엉 울다 깨고 돌아눕는 것을 안다. 우리 승묵이 당신 탓이 아니라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줬어야 했는데. 우리 남편 너무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긴 외출 끝에 병길이 기차역에 마중 나와 있었다. 인숙은 처음으로 그 말을 꺼냈다. "내가 승묵이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더라도 당신처럼 이야기했을 거야."병길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인숙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2018년, 그해 월피동을 떠난 건 인숙 부부만이 아니었다. 장훈도 보금자리를 일산으로 옮겼다. 33년 동안 살며 4남매를 키웠던 동네를 벗어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식들을 지키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맏이인 준형이가 여객선 참사로 세상을 떠난 뒤 동생들은 쏟아지는 비방과 억측에 상처 입으며 겨우 버티고 있었다. 병길이 그랬듯 장훈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일산으로 이사한 뒤 그는 주류 유통업체에서 일한다. 1.3톤 트럭을 몰고 고양과 은평 일대 식당에 소주와 맥주를 배달한다. 아픈 두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매일 박스 100여 개를 나른 지 꼬박 1년 반이 됐다. 사실 장훈에게는 명함이 하나 더 있다. 거기엔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이 쓰여 있다. 집 근처에 8평 남짓한 연구실도 마련했다. 보기만 해도 두통이 생길 것 같은 보고서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공간이다. 연구소장은 장훈에게 여전히 어색한 자리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도 하다. 6년 전 스스로 과학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날을 장훈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3회에서 계속 / 4월 16일 한국일보 지면과 홈페이지에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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