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속의 여론

한식을 생각했을 때 당신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관세청의 발표에 따르면 라면 수출액은 지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9년 연속 상승하며 매년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지난해 라면 수출 물량(24.4만 톤)은 봉지라면(120g)으로는 약 20억 개, 중형 승용차로는 약 5만 대를 수출한 것과 같은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총 132개국으로 수출되며 전 세계에 한국의 매운맛을 알리고 있는 자랑스러운 K푸드인 라면도 혹시 ‘한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과연 어떠한 음식을 한식이라고 부르고 있을까?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3월 8일~11일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식의 정의와 K푸드에 대한 생각을 확인했다. 한식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76%가 ‘김치·장류 등 발효음식을 활용’이라고 답해 가장 강하다. ‘밥과 국물 및 반찬을 함께 먹는(66%)’, ‘사계절에 맞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59%)’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응답도 높으나, ‘건강을 중요시하는(54%)’, ‘채식이 많이 사용되는(50%)’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람은 절반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20·30대에서는 ‘건강’, ‘채식’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절반 이하로 낮다. 한식을 정의할 때, 65%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먹어왔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해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한국적인 양념을 사용했는지(63%)’, ‘주로 한국에서만 먹는 음식인지(61%)’ 등의 순이다. 반면 ‘한국인 또는 한국기업이 만든 음식인지’, ‘국내산 식재료로 만들어졌는지’가 한식을 정의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는 사람은 각각 42%로 다른 항목들보다 낮은데, 20·30대의 경우 이들 항목이 매우 중요하다는 응답은 10명 중 3명 수준으로 더 낮다. 한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와 중요 특성은 이렇게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개별 음식으로 들어가면, 한식을 정의하는 다양한 인식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치, 김밥, 삼겹살, 라면 등등 다양한 음식을 제시하고 한식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김치, 된장찌개가 한식이라는 응답은 둘 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97%, 김밥 또한 85%로 높은 수준이다. 반면 순대와 만두의 차이는 흥미롭다. 두 음식 모두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 북방지역에서 한반도로 전해져와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이지만 순대가 한식이라는 응답은 79%로 다수인 반면, 명절음식으로도 먹는 만두가 한식이라는 응답은 50%로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만두는 중국에서도 많이 먹는 음식으로, ‘한국에서만 먹는 음식’의 기준에는 어긋나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추측된다. 국내산 삼겹살 구이가 한식이라는 응답은 91%로 매우 높은데 특이한 점은 같은 삼겹살 구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입산 삼겹살 구이의 경우 한식이라는 비율이 60%로 크게 낮아진다는 점이다. 소 등심스테이크의 경우에도 국내산일 경우 한식이라는 응답이 42%, 수입산은 14%로 원산지에 따라 응답의 차이가 있다. 함께 곁들이는 부식이 있기는 하나, 원재료를 구워서 먹는 것 자체를 하나의 음식으로 지칭하는 삼겹살 구이의 경우 원산지 또한 한식인지를 판단할 때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으로 간주된다. 국내산과 수입산에 따른 차이는 식재료의 원산지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20·30대보다는 60세 이상의 고연령대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일본식 중화요리인 라멘을 인스턴트 제품으로 개발한 라면은 앞서 관세청 발표에서도 언급되었듯 해외로도 많이 수출되며,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음식이다. 하지만 라면을 한식이라고 보는 사람은 전체의 절반 수준인 53%에 그친다. 한국식 중화요리인 짜장면도 48%만이 한식이라고 판단해 의견이 갈린다. 특유의 매운맛이 특징인 한국 라면, 중국의 작장면과는 다른 한국식 짜장면 등은 충분히 한국화되었고 우리가 많이 먹고 있는 음식이지만, 한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고추장과 물엿을 섞어 만든 양념을 기본으로 하는 양념프라이드치킨이 한식이라는 응답은 61%, 프라이드치킨 위에 파채를 얹어 겨자소스와 함께 먹는 파닭은 65%이다. 1977년 한국에 최초의 프라이드치킨집이 개업한 것을 감안할 때, 비교적 먹어온 역사가 짧고 전통적인 한식과도 거리가 있는 음식임에도 치킨이 한식이라는 응답은 적지 않다. 더욱이 20·30대의 경우 양념프라이드치킨이 한식이라는 응답이 77%, 파닭은 80%로 치킨류를 한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시지를 이용한 음식의 경우 소시지야채볶음 42%, 햄계란부침 50%, 부대찌개는 69% 수준으로, 부대찌개를 제외하면 한식이라는 응답은 절반 이하이다. 소시지야채볶음의 경우 60세 이상에서는 오직 24%만이 한식이라고 응답하였으나 20·30대에서는 64%가 한식이라고 응답하는 등 연령대별로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햄계란부침에서도 비슷해 20·30대의 경우 비전통적인 식재료까지 한식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함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했고, 이제는 회사의 사무용품으로 분류될 정도로 흔한 커피믹스가 한식이라는 응답은 63%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이제는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한국의 초코파이 역시 한식이라는 응답이 64%, 1950년대 일본에서 건너와 이제는 겨울철 대표 길거리 간식이 된 붕어빵의 경우 78%가 한식이라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들은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먹어온 팥빙수 64%, 화채 72%, 호떡 73% 등과 비교하였을 때도 큰 차이가 없어 한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선 결과들을 종합하면, 사람들은 한식을 ‘발효음식’,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 등 한두 가지 기준으로만 결정하지는 않는다. 전통성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독특한 특성을 갖췄는지, 한국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등도 모두 복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일부 음식의 경우에는 세대 간 인식 차이도 뚜렷하다. 뷰티·패션, 음악, 영화·드라마, 전자제품 등 대표적인 한류 영역들의 경우 해외에서 ‘매우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과 ‘매우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엇비슷하다. 반면 한식의 경우 해외에서 ‘매우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47%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랑스럽다’는 사람은 이보다 많은 63%이다. 한식에 대한 자부심이 다른 한류 영역들 못지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로 뻗어 나가는 한식 등을 일컫는 말인 K푸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기업이 수출하는 스낵 및 마요네즈 등도 K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65%, 외국기업이 현지에서 판매하는 한식은 81%로 우리는 K푸드를 생각할 때 누가 만들었는지보다는 어떠한 음식인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 전통음식을 정의할 때,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 시기인 1876년~1945년부터 먹기 시작한 음식을 전통음식이라고 보는 사람은 58%, 고춧가루가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인 조선시대 중기즈음 시점부터 먹기 시작한 음식을 전통음식이라고 보는 사람은 79%이다. 역사가 100년 남짓한 음식도 전통음식이라고 보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나,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먹어온 음식을 한식으로 보는 사람이 다수이다. 그렇다면 K푸드로 소비될 때 역사가 오래된 전통음식과 비교적 최근부터 먹기 시작한 한식 중 어느 것을 더 자랑스러워할까? 역사가 오래된 전통한식은 71%가 ‘매우 자랑스럽다’라고 응답한 반면 비교적 최근부터 먹기 시작한 한식에 대해서는 44%만이 ‘매우 자랑스럽다’라고 응답하여 같은 한식이라도 역사가 오래된 전통한식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식을 말할 때는 ‘먹어온 기간', ‘한국적인 양념’, ‘한국에서만 먹는지’ 등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김치나 된장찌개와 같이 한식으로 의견이 명확하게 모이는 몇 개의 음식들을 제외하면, 어떤 요인을 더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의견이 나뉘는 모습이다. 다만 음식이라는 것은 늘 변화하고 발전해왔으므로, 우리의 전통음식은 잘 보전하고 새로운 것은 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식의 범위는 더 확장될 것이다. 해외에서 우리의 K푸드가 더 사랑받기를 바라본다.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이 봄, 목련 꽃잎에 담긴 슬픔과 희망

‘봄의 여왕’으로 불리는 목련꽃은 단아하면서도 화려하다. 하얗고 탐스러운 꽃봉오리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듯하고 정결하게 한다. 하지만 목련꽃처럼 아쉬운 꽃도 없다. 한겨울에 생긴 겨울눈에서 꽃이 피기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막상 꽃이 피고 나면 금세 지고 말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진 꽃잎에 박힌 얼룩을 볼 때마다 짧은 봄날의 시간이 측은하고 안타깝다. 목련은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울부터 오랜 시간을 준비한다. 혹독한 눈보라와 추위를 견딜 수 있게 꽃과 잎을 감싸줄 털옷을 만들어 겨울눈을 지킨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 봄이 시작되자마자 다른 봄꽃들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하지만 한겨울 동안 너무 힘을 쓴 탓일까, 피어있는 순간이 너무나 짧고 허무하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봄이 지나가도 목련 꽃잎 한 장 한 장에 깃든 아름다움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문다. 그러나 타들어 가는 꽃잎 사이로 새롭게 연녹색의 새싹이 피어오른다. 목련꽃은 지지만 그 안에선 또 다른 희망이 움트는 것이다. 이 봄, 길을 걸을 땐 가끔 주위를 둘러보자. 길가에 떨어진 목련 꽃잎이 있거든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라. 살포시 드러난 희망의 새싹들이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 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한국일보 70년·70대 특종

<10>남산타워 필화사건(1974)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기사가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려 필화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에 입각해 불편부당의 자세로 쓰인 1970~1980년대 한국일보 기사의 상당수가 당시 최고 권력자의 편파적 해석으로 결과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대표 사례가 1974년에 발생했다. 한국일보는 그해 5월 12일 일요일 자 사회면 톱기사에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남산타워전망대를 독점 소개했다. 문창재(1946.1.17~2023.4.8) 기자의 이 르포기사는 ‘북의 땅 송악이 보인다. 북악도 성큼 수채화처럼’이란 제목으로 이 건물이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오히려 남산타워를 한동안 서울시민과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신문이 배달된 일요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이 노발대발해서 긴급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했다. 박 대통령은 두 가지를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남산타워에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인다면 개성에서도 당연히 남산타워가 잡힐 것이므로 북한 장거리포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또 하나는 남산타워에서 북악산이 발아래 훤히 보인다면 불순분자가 전망대에서 고성능 무기로 청와대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박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분노는 취재기자는 물론 사회부장과 편집국장까지 정보기관에 연행돼 호된 조사를 받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적성을 띤 기사를 게재한 저의와 배후를 대라는 것이었다. 독재시절 웃지 못할 필화사건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듬해 8월 중순 전망대 등 남산타워 시설이 완공됐으나 신문 방송 등 모든 매스컴에는 그 사실조차 보도하지 못했다. 입구에는 '전망대 사용금지'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대통령 특별지시 팻말이 내걸렸다. 전망대가 일반에 공개된 것은 박 대통령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1980년 10월 15일부터였다. 한국일보는 1980년 8월 30일 자 사회면에 전망대가 서울시민에게 돌아가게 됐다는 사실을 또다시 특종 보도했다. 서울의 자랑인 남산타워 전망대는 이렇게 해서 한국일보가 그 문을 닫게 했고, 또 열게도 한 셈이 돼 버렸다.

더 알고 싶은 이야기

한국일보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