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육아 어두운 면만 강조... 예능 시청자들의 고민

입력
2023.08.07 21:55

방송에 등장한 결혼 생활·육아의 부정적 면모
시청자 "딩크·비혼, 더 확고해진다"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부부들의 일상을 관찰해왔다. 대화가 단절된 부부, 상대에게 폭언을 하는 부부 등 보기만 해도 충격적인 남녀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 포스터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부부들의 일상을 관찰해왔다. 대화가 단절된 부부, 상대에게 폭언을 하는 부부 등 보기만 해도 충격적인 남녀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 포스터

'하트시그널' '솔로지옥' 등의 데이팅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에게 설렘을 안기며 연애에 대한 다양한 로망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부부가 등장하는 방송들을 보면 결혼 생활과 아이를 키우는 일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연애는 달콤하지만 결혼과 육아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히고 있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는 육아 전문가들이 부모들에게 육아법을 코칭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속 아이들의 문제 행동이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왔다. 금쪽이들은 막말, 폭력 등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아왔다. 금쪽이가 다양한 형태의 도움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네티즌들의 충격이 완벽하게 사라지진 않았다.

방송을 보면 결혼 생활도 많은 아픔을 가져다주는 듯 보인다.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부부들의 일상을 관찰해왔다. 대화가 단절된 부부, 상대에게 폭언을 하는 부부 등 보기만 해도 충격적인 남녀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문제 부부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갈등이 수없이 많이 그려지는 중이다. 스타 살림남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도 가족 사이의 언쟁들이 담기곤 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결혼 생활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됐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출산 지양 프로그램이다" "딩크, 비혼이 더욱 확고해진다" 등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본 시청자들의 후기가 게재됐다.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을 봤다는 네티즌은 "결혼 공포증 걸리겠다"는 글을 남겼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는 변화가 필요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SBS 플러스 제공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는 변화가 필요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SBS 플러스 제공

물론 방송이 결혼, 육아의 부정적인 면을 다루는 것 자체가 문제 되진 않는다.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내로 살아가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결정을 내리기 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데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부정적인 면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방송 속 부부, 부모들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이 솔루션을 참고해 문제 상황의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이혼한 부부들의 갈등을 다룬 '우리 이혼했어요 2', 변화가 필요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도 있었다. 결혼, 육아의 부정적 면모를 다루는 방송들이 지속적으로 TV 화면을 채우면서 시청자들은 누군가의 남편, 아내나 부모가 된 자신의 미래를 우려하게 됐다.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김성희 강사는 본지에 결혼, 육아 관련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그는 "TV 시청자들은 결혼이나 육아와 관련된 프로그램에서 부부의 긍정적 상호작용과 관계를 봤을 때 결혼을 꿈꾸거나 출산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미디어에 의해 결혼이나 출산, 육아의 부정적 측면에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사람들은 모델링을 통해 이를 학습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더욱이 자신이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되거나 보다 비관적인 미래를 가정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누군가의 남편, 아내, 부모로 살아가는 일이 마냥 행복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출산, 육아를 막연하게 두려워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정적 면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줄어들거나 긍정적 부분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 한다. 결혼, 육아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일이지만 예능가가 나서서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입을 모아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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