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의정 활동, 밤에는 운전대 잡는 초선 군의원… 무슨 사연이?

입력
2024.06.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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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식 군위군의회 부의장 저녁마다 운전대
"의정활동, 할수록 할 게 더 많아져"
'주민 밀착형 의원'... 이상적 정치인


대구 군위군의회 부의장인 서대식 의원이 자신의 택시를 가리키고 있다. 서 의원은 저녁마다 택시기사로 변신해 군위 곳곳을 누비고 있다. 김광원 기자

대구 군위군의회 부의장인 서대식 의원이 자신의 택시를 가리키고 있다. 서 의원은 저녁마다 택시기사로 변신해 군위 곳곳을 누비고 있다. 김광원 기자

"아저씨, 우리 학교에 매점 하나 짓게 해주세요."

지난해 10월 밤늦게 택시를 타고 가던 대구 군위고 학생들이 택시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학교에 매점이 없어서 야간자습 시간에 너무 배가 고프다는 하소연이었다. 택시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이 고등학교에는 자판기가 들어왔다. 정식 매점은 아니었으나 매점을 대신할 정도로 메뉴가 다양했다. 학생들은 밤거리로 나가지 않고 교내에서 '간식'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택시기사는 대구 군의군의회 부의장인 국민의힘 서대식(49) 의원이었다. 초선인 그는 의원이 되고도 일과가 끝나는 오후 6시 이후면 택시 운전대를 잡는다. 자정 무렵까지 개인택시 영업을 하면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군위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니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곳의 민원도 들을 때도 많다. 택시 트렁크에는 장화가 필수품이다. 언제든 논밭을 누비며 현장을 살피기 위해서다.

농촌이 대부분인 지역이라 배수로나 농로 관련 민원이 자주 들려온다. 그때마다 민원을 제기한 주민을 차에 태우고 현장을 둘러본 후 해답을 찾는다. 모두 생업에 관련된 문제다. 지난 1월에는 한 석산개발업체가 채석단지 연장 지정을 추진해 주민들이 환경오염과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어린이 관련 민원에는 특히 관심이 많다. 한번은 어느 젊은 부부가 "아이들이 분수대를 좋아해서 인근 지역으로 놀러 간다"는 말을 듣고 관내 생활체육공원에 분수대를 설치했다. 이곳은 이 지역 아이들의 명소가 됐다.

서 의원은 20년 넘게 택시를 몰았다. 2022년 지방선거를 치를 때도 직접 선거 차량을 운전했다. 군위의 지름길을 모두 꿰고 있는 까닭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유권자를 찾아다녔다. 다른 후보가 세 군데를 돌 때 그는 다섯 군데를 다녔다. 당선 이후 한동안 '서 기적'으로 통했다. 느닷없이 투입된데다 선거 운동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치른 선거에서 이긴 까닭이었다. 당에 그를 후보로 추천한 인사도 "자네가 당선될 줄은 몰랐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의 평소 운전 실력과 진심 어린 유세 활동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였다.

군위군의회 전반기 부의장인 그의 하루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챙길 일도 많고, 고민해야 할 일은 더 많다. 선거 때는 까맣던 머리카락이 제법 새치로 희끗하다. 부의장을 맡으면서 방문할 곳도 많아져 정작 자신의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의원 생활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지만 "택시를 몰며 민원을 듣겠다"는 공약을 취소할 마음은 전혀 없다. 서 의원의 말마따나 택시 운행은 공약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민들의 일상을 파고드는 '주민 밀착형 의원'이 그가 꿈꾸던 정치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누워 자는 시간이 다섯 시간도 채 안 되기 일쑤지만 택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는 "군위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과 각종 개발로 눈에 띄게 변모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주민들의 일상을 살뜰하게 챙기는 군의원이 필요하다"며 "민심이 천심이라는 생각으로 의정활동도 하고 택시도 몰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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