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공의 언론통제, 보도지침 폭로(1986)

입력
2024.06.10 04:40
25면

편집자주

매일매일, 시시각각 한국일보 플랫폼은 경쟁매체보다 빠르고 깊은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954년 창간 이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거나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낸 수많은 특종이 발굴됐다. 지난 70년 다수의 특종과 사건 중 파장이 컸던 내용들을 연도별로 안배해 ‘70대 특종’을 골라내 뉴스 이용자들에게 소개한다.

1980년대 한국일보 편집국 칠판에 적혀 있었던 문화공보부 보도검열지침. 이런 정권의 언론 통제는 1986년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고, 87년 6월 항쟁 이후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대 한국일보 편집국 칠판에 적혀 있었던 문화공보부 보도검열지침. 이런 정권의 언론 통제는 1986년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고, 87년 6월 항쟁 이후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0~80년대 대한민국 언론 암흑기에도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유신체제와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국내 언론계의 분위기를 선도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제3공화국 시절 유신체제의 언론통제에 대해 집단적 거부 움직임에 나선 바 있으며, 5공화국 시절에는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5공 정권이 언론을 통제했던 ‘보도지침’이 알려진 경위는 이렇다. 1986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는 1985년 10월 19일부터 1986년 8월 8일까지 문공부 홍보정책실이 각 언론사에 시달한 584개항의 보도지침 내용을 한국일보가 보관 중이던 자료철에서 복사해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넘겨줬다. 대부분 언론사는 문공부에서 내려온 보도지침을 참조 후 폐기하거나 별도 보관하지 않았으나, 한국일보 경영진과 구성원들은 당장의 전면 거부는 힘들어도 그 부당함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보관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1988년 국회 차원에서 이뤄진 5공 청문회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질문: 박관용 위원

다른 신문은 보도지침을 받고 전부 다 없애 버렸는데 마침 한국일보에는 이것이 정리돼서 보관돼 있었습니다…(중략)…어떻게 해서 보관하게 되었는지 경위를 아시면 말씀을 좀 해 주시지요.

답변: 장강재 전 한국일보 사장

1986년 초로 기억이 됩니다. 당시 문공부 장관이 플라자호텔에서 만나자 그래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미니 차트 같은 것을 가지고 왔는데 보도지침을 한국일보가 가장 많이 위반을 했다는 경고 비슷한 것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앞으로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라 하는 지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주언 기자가 전달한 보도지침은 민언련에 전달된 뒤, '월간 말'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월간 말'지는 1986년 9월 6일 특집호를 발간해 당시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 실상을 알렸다. 한국일보가 단초를 제공해 군사정권의 언론탄압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 기자는 그해 12월 17일 구속됐다. 국내 종교·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까지 나서 석방을 촉구했다. 한국일보도 김 기자의 변호사를 직접 선임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섰다. 결국 김 기자는 1987년 6월 3일 징역 8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한국일보 70년·70대 특종 (연도순)

18
독극물 협박사건(1985)
19 서울대생 이동수 분신 사건(사진·1986)
20 5공의 언론통제, 보도지침 폭로(1986)
21 합의개헌 좌초 간주, 4·13 호헌조치 예고(1986)
22 최루탄을 쏘지 마라(사진·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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