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권한 없는 방심위가 총선 방송도 심의…‘마이웨이’ 계속된다

입력
2024.05.27 19:25
수정
2024.05.27 19:32
구독

방심위 여권 추천 위원들이 가결
야권 위원 "선거방송 심의 정당성 없다"
여권 위원 "심의 안 하는 건 직무유기"
일방적 회의 종료로 '외유성 출장' 질의 차단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심위 대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심위 대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22대 총선 관련 선거 방송을 심의하게 됐다. 한시적 기구인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활동기간 내에 민원 안건을 다 심의하지 못한 탓이다. 야권 추천 방심위원들은 “방심위는 선방위와 전혀 다른 기구라서 심의 정당성이 없다”며 반발했으나, 여권 추천 위원들이 가결시켰다.


"정당성 없다" vs "관례대로"

방심위는 27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 대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선방위가 처리하지 못한 선거 방송 관련 민원을 방심위가 심의하기로 의결했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22대 총선 선방위는 선거 종료 후 30일까지인 지난 10일까지 활동했지만 지난 3, 4월에 제기된 민원은 심의하지 못했다.

야권 추천 위원들은 방심위가 선거 방송을 심의할 권한이 없다며 반대했다. 야권 추천 윤성옥 위원은 “선방위와 방심위는 설치 목적, 위원 구성, 심의 대상이 다르다”며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두 기구의 심의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류 위원장이 이 같은 제도 파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야권 추천 김유진 위원은 “류 위원장이 선방위를 (여권 편향으로) 불공정하게 구성했고, (방심위가 안건을 배정했던 관행과 달리) 선방위로 민원 넣겠다는 민원인들의 주장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해 유례없이 많이 안건이 선방위에 들어와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방심위는 잔여 안건을 심의할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여권 추천 문재완 위원도 “선방위가 아닌 다른 기구가 선거 방송에 법정제재(중징계)를 하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입장을 냈다.

류희림(왼쪽) 방심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백선기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 백 위원장은 류 위원장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다. 방심위 제공

류희림(왼쪽) 방심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백선기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 백 위원장은 류 위원장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다. 방심위 제공

하지만 여권 추천 위원들은 전례에 따라 방심위가 심의하면 된다고 봤다. 방심위는 잔여 안건 관련 규정이 없어 2017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를 질의했고, 선관위는 “방심위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라”고 답변했다. 이에 잔여 안건이 있으면 방심위에서 심의해왔다. 류 위원장은 “제때 심의하지 못했다고 안건을 폐기하는 것은 방심위의 직무유기”라며 선거방송을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2대 총선 선방위는 역대 선방위 중 가장 많은 법정 제재를 내린 데다 편파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아 방심위에서 이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유성 출장' 질의하려 했으나 '입틀막' 회의 종료

한편 이날 회의 마지막에 김유진 위원은 류 위원장의 외유성 출장 논란을 ‘기타 안건’으로 발의하려 했으나 류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다음에 하라”며 회의를 종료시켰다. 김 위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출장 관련 자료를 봐도 류 위원장이 이번 출장에서 무엇을 얻은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질의하려 했다”며 “2,800만 원의 출장 비용과 사무처 인력 낭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희림(오른쪽) 방심위원장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마컴 에릭슨 구글 정부·대외정책 담당 부사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방심위 제공

류희림(오른쪽) 방심위원장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마컴 에릭슨 구글 정부·대외정책 담당 부사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방심위 제공

지난 14~18일 미국 워싱턴으로 출장을 간 류 위원장은 마컴 에릭슨 구글 정부·대외정책 담당 부사장과 실무협의를 했으며 “불법·유해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 구글 측이 향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삭제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구글 측은 이 '약속'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외유성 출장 의혹을 잠재우려 협의 결과를 부풀렸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날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에 따르면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구글과 방심위는 (실무협의에서) 유튜브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사전 합의하지 않았으며, 에릭슨 부사장은 유튜브 담당 임원이 아닌 인공지능(AI) 콘텐츠 담당”이라고 밝혔다.


남보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