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마, 공부해, 당장 돈 쓰지 마" 크리스티 아시아 수장의 미술품 구매 조언

입력
2024.05.30 10: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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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태 총괄사장
"서울, 중요한 '아트 허브' 될 것...컬렉터 저력 있어
경제상황 도전적... 좋은 작품 출품이 회복 관건"

28일 '2024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가 열리고 있는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크리스티 제공

28일 '2024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가 열리고 있는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크리스티 제공

"로마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듯,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서울이 중요한 '아트 허브(예술 거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8일 2024년 크리스티 홍콩의 하이라이트인 '20, 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를 앞두고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만난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의 말이다. 그는 세계적 경매사 크리스티의 아시아 전략을 이끄는 수장이다.

홍콩에 아시아 거점을 둔 크리스티는 2년 전부터 한국 시장에 파격적으로 투자했다. 2022년에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 기간에 맞춰 영국 표현주의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과 루마니아 출신 세계적 화가 아드리안 게니의 특별전을 열었다. 전시작 추정가만 총 4억4,000만 달러(약 5,740억 원)로, 홍콩 바로 다음 순서로 미술관급 작품 16점을 전시해 서울의 위상을 증명했다. 지난해에는 장 미셸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의 작품 10여 점을 선보였다. 그는 한국을 '활발한 컬렉터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갖춘 곳'이라고 평가했다.

"모두가 이미 서울을 좋아해요. 한국 음식이나 화장품, 그리고 한류로 인해 서울을 영감을 주는 도시로 생각하죠. 1970~1980년대 홍콩의 영화가 각광받고 이후 일본의 망가가 (문화적으로) 주목받았다면, 지금은 그 역할을 한국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침체에도 "미술 시장 회복력 좋아"

28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경매에 앤디 워홀의 1965년작 'flowers'가 경매에 부쳐지고 있다. 이 작품은 6,662만5,000홍콩달러(약 116억 원)에 낙찰됐다. 홍콩=이혜미 기자

28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경매에 앤디 워홀의 1965년작 'flowers'가 경매에 부쳐지고 있다. 이 작품은 6,662만5,000홍콩달러(약 116억 원)에 낙찰됐다. 홍콩=이혜미 기자

전쟁과 경기침체 여파로 미술 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벨린 사장은 시장 회복력을 낙관했다. 최근 크리스티 뉴욕의 미술품 경매가 낙찰률 92%를 기록하는 등 경매 시장 분위기에 훈풍이 도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경제 상황이 도전적인 것은 맞지만 이번 홍콩 경매의 경합 정도와 판매 총액 등을 보면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지금 시장의 어려움은 수요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의 문제입니다. 2022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의 컬렉션이 16억 달러에 모두 팔렸듯, 좋은 작품을 출품한다면 고객들이 찾아올 겁니다."

"젊은 컬렉터들이여, 서두르지 말라"

2019년 1월부터 크리스티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을 맡고 있는 벨린은 아시아 기반 컬렉터의 경매 참여와 프라이빗 세일 등을 책임지고 있다. 크리스티 제공

2019년 1월부터 크리스티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을 맡고 있는 벨린은 아시아 기반 컬렉터의 경매 참여와 프라이빗 세일 등을 책임지고 있다. 크리스티 제공

벨린 사장이 한국의 젊은 컬렉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얼까. "서두르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역시 와인, 시계, 유럽 가구 수집을 시작으로 최근 아시아 근현대 미술에 눈을 돌린 컬렉터다. 박서보 등 단색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 추상화 1세대인 이성자의 초기 작품을 2점 갖고 있다. 2019년 약 131억8,750만 원(구매 수수료 미포함)에 낙찰돼 '한국미술 최고가'를 쓴 김환기 화백의 작품 '우주' 경매 출품도 그의 성과다.

미술품 거래 수수료로 매출을 올리는 경매 업체의 지역 수장이지만, 벨린 사장은 예술품 소장이 "투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투자만 원한다면 오히려 주식이나 부동산이 낫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크리스티가 파는 건 역사의 조각"이라며 "열정을 갖고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걸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술과 문화는 역사와 연결돼 있죠. 저는 지적인 역동성으로 미술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공부하세요. 지금 갖고 있는 돈을 당장 쓰겠다는 마음으로 결정하지 마세요."

홍콩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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