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둘 수도, 제재에 나설 수도…정부 '대북 풍선' 맞대응 딜레마

입력
2024.05.30 16:1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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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풍선, 헌법상 ‘표현의 자유’
“자제 요청 필요하다면 검토”
軍, 대북 확성기·드론 침투 등 고려


29일 경찰관이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의 농경지까지 날아온 북한의 오물 풍선을 살펴보고 있다(왼쪽 사진). 서울 도심에서도 오물 풍선 추정 잔해가 발견돼 종로구 안국역 일대에서 군·경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독자제공

29일 경찰관이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의 농경지까지 날아온 북한의 오물 풍선을 살펴보고 있다(왼쪽 사진). 서울 도심에서도 오물 풍선 추정 잔해가 발견돼 종로구 안국역 일대에서 군·경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독자제공

정부가 북한의 대규모 오물 풍선 도발에 "우리 단체에 대한 대북전단 살포 자제 요청이 필요한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북한이 오물 풍선 도발의 이유로 들었던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어떻게 관리하고 조치할지 근본적인 고민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 단계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그 부분(대북전단 살포 자제 요청)도 살펴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자제 요청을 하지 않는 현재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변경된 것은 아니"라며 "대북전단 문제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고려해서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는 일단 원론적 답변을 내놨지만 북한의 도발에 그냥 있기도, 그렇다고 대응하기도 난감한 모습이다. 우선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지난해 9월 내려진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헌재는 당시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남북관계발전법 조항(24조1항3호·25조1항)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섣부른 자제 요청은 곧 위헌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통일부는 헌재 결정 이후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한 공식 입장에서 '살포 자제'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군 당국은 통일부보다 조금은 적극적이다. 상황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방송과 드론 침투 등 직접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물 풍선 살포 등 북한의 행위를 "군사 작전"이라고 규정하고 "(군사 작전에 대해선) 대비태세를 갖추는 게 군의 임무"라고 말했다. 작전에 따른 행위, 즉 도발이기 때문에 당연히 맞대응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군 역시 고민은 있다. 맞대응이 불러올 부작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특히 대북 확성기 방송 즉각 재개 등에 대한 엇갈린 여론은 큰 부담이다. 방송을 재개할 경우 북한 역시 곧바로 맞대응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 그 경우 휴전선 일대 지역 주민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남한 내 갈등 유발'이라는 북한 측 노림수에 그대로 넘어가는 꼴이다.

통일부는 일단 북한을 향한 '메시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특히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인민의 표현의 자유'라며 오물 풍선 살포를 정당화한 전날 담화에 대해 "이번 오물 풍선은 '인민이 살포'한 것이라고 한 건, 살포 주체가 인민이 아니라 '당국'임을 자백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당국 감시하에 주민 의사 표현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는 북한의 '허울뿐인 표현의 자유'를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논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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