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장 봐주기 감찰 의혹' 경찰 수사 윗선 향하나

입력
2024.06.10 18:30
수정
2024.06.10 20:18

전 진안소방서장 업무추진비 유용 등
정직 3개월… 노조 "솜방망이 처벌"
당시 소방본부장 등 직무유기 고발
경찰, 전 감찰팀장 등 2명 입건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 소방노조가 지난해 9월 1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병철 전 진안소방서장에 대한 전북도징계위원회의 '정직 3개월' 징계를 철회하고 파면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공노총 소방노조 제공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 소방노조가 지난해 9월 1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병철 전 진안소방서장에 대한 전북도징계위원회의 '정직 3개월' 징계를 철회하고 파면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공노총 소방노조 제공

업무추진비 횡령 등으로 징계를 받은 일선 소방서장에게 제기된 '감찰 봐주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전북소방본부 감찰 라인을 대상으로 강제 수사에 나서면서 윗선 개입 여부 등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전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10일 직무유기 혐의로 전북소방본부 전 감찰팀장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배임·횡령 의혹을 받은 김병철 전 진안소방서장을 상대로 감찰을 하면서 유의미한 진술을 받고도 조사 기록을 일부 남기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노조(공노총 소방노조)는 지난해 9월 "김 전 서장에게 정직 3개월에 횡령액의 2배 징계 부과금 처분을 내린 건 봐주기 감찰을 한 것"이라며 주낙동 전 전북도 소방본부장과 당시 징계위원장이었던 임상규 전 전북도 행정부지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또 업무상 횡령 혐의로 김 전 서장에 대한 고발장도 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지난 3일 전북소방본부 행정과와 감찰과 등을 압수수색했다.

공노총 소방노조는 김 전 서장이 2021년 부안소방서에서 1년 6개월, 2022년 진안소방서에서 6개월간 각각 근무한 기간에 발생한 비위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업무추진비 유용 △관용차 사적 이용 등이다.

서문철 공노총 소방노조 전북위원장은 "김 전 서장은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과 결과 보고가 다를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면서 "대표적으로 지난해 3월 7일 성공일 소방교 순직 애도 기간 중 한 횟집에서 직원 회식을 위해 업무추진비 15만 원 상당을 썼지만, 함께 식사했다는 직원은 찾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전 서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한 것과 관련해 "역대 서장들은 1년간 사용한 관용차의 주행거리가 보통 5,000~1만㎞ 정도였는데 김 전 서장은 부안소방서장 때에는 3만 8,000㎞, 진안소방서장 때에는 1만 7,900㎞를 탔다"며 "주말이나 연차 휴일, 개인 교육 기간에도 전주에 있는 자택에 개인 자가용을 두고 행정 차량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2012년 근무지 무단 이탈로 해임 처분이 내려진 사례를 들어 "중점 비위 대상인 공금 횡령과 무단 직장 이탈이 정직 3개월이면 웬만한 비위는 그냥 봐준다는 뜻"이라며 "도 징계위원회가 김 전 서장에 대한 징계 양정을 정하는 데 형평성과 비례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전 서장의 배임·횡령액이 288만 원으로 추산됐지만 강등이나 해임 및 파면 처분을 면하게 하기 위해 금액을 200만 원 이하로 축소한 건 아닌지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누군가 외압을 행사해 의도적으로 비위 행위를 감춘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감찰이나 징계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수사 대상에 오른 당사자들은 혐의를 극구 부인하거나 말을 아끼고 있다. 임 전 행정부지사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징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절차대로 위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징계 수위를 최종 의결했다"며 "이 과정에서 절대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주 전 소방본부장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 이야기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전북소방본부 수뇌부는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대응엔 신중한 모양새다. 이오숙 전북소방본부장은 "전임 본부장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소방공무원이 국민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는 직업군이지만 그에 비해 자정 능력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소방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은 만큼 내부 비위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며 "동료애라는 미명 아래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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