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 독·프서 약진했지만, 북유럽선 약해져... 왜?

입력
2024.06.11 16:00
수정
2024.06.11 16:1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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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이슈 덜 부각된 북유럽에서 극우 좌절
헝가리는 정치신인에, 스페인은 보수에 밀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왼쪽 사진)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손 키스를 하고 있다. 두 인사는 모두 유럽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이들이 속한 정당은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각각 5월 스페인 마드리드, 4월 이탈리아 페스카라에서 촬영. 마드리드·페스카라=AFP 연합뉴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왼쪽 사진)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손 키스를 하고 있다. 두 인사는 모두 유럽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이들이 속한 정당은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각각 5월 스페인 마드리드, 4월 이탈리아 페스카라에서 촬영. 마드리드·페스카라=AFP 연합뉴스

6~9일(현지시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극우 정당의 약진이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에서 극우 정당 의석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과 스페인 등에선 오히려 극우 정당의 세가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 문제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심각한가 여부가 극우 정당의 성패를 갈랐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 잠정치(10일 오후 4시 기준)에서 강경우파 성향 정치그룹 '유럽보수와개혁'(ECR)은 전체 의석 720석 중 73석(10.1%)을, 극우 성향 정치그룹 '정체성과 민주주의'(ID)는 58석(8.1%)을 각각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각각 ECR과 ID에 속한 이탈리아형제들(Fdl)과 프랑스 국민연합(RN)의 압도적 승리 덕이었다.

유럽의회에서 교섭단체 역할을 하는 정치그룹은 국적이 아니라 이념·가치가 비슷한 정당이 모여 결성한다. 기존 정치그룹에 속해있지 않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도 유럽의회에서 15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외신들은 "극우 정당의 기록적인 의석 확보가 기성 지도자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CNN방송) "유럽은 우경화했다"(유로뉴스)는 평가를 앞다퉈 내놨다.

그러나 27개 회원국 전반을 놓고 보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럽의회에서 극우 정당의 선전이 부각된 것은 인구가 많아 의석을 많이 할당받는 독일(96석), 프랑스(81석), 이탈리아(76석) 등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했기 때문이다. 실제론 극우 정당이 전보다 영향력을 상실한 국가도 많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10일 독일 베를린 기독민주연합 본부에서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10일 독일 베를린 기독민주연합 본부에서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스웨덴·핀란드 극우 약화... "이민, 우선순위 낮아"

극우 정당이 쓴맛을 본 대표적인 국가로는 스웨덴이 거론된다. 10일 오후 8시 기준 유럽의회의 선거 결과 잠정치에 따르면 극우 스웨덴민주당은 득표율 13.2%를 받았다. 사회민주당(24.9%), 온건당(17.5%), 녹색당(13.8%)에 이어 4위에 오른 것이다. 2022년에 20.5% 득표율로 제2당까지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저조한 성적이다.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에 할당된 21석 중 3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스웨덴민주당이 부진했던 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이민 문제가 유권자들에게 덜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극우 정당이 반(反)이민 정서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스웨덴 싱크탱크 유로파 분석가인 크리스틴 니센은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는) 남유럽과 달리 북유럽에서는 이민이 유권자들의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AP통신에 말했다.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핀란드에서는 중도우파 성향의 집권당인 국민연합당(24.8%)과 좌파동맹(17.3%)이 1, 2위를 차지했다. 핀란드 YLE 방송은 "핀란드가 대규모 이주 물결에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극우 정당인) 핀란드당이 '반이민'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핀란드 헬싱키사노맛은 "유럽의 극우 세력을 부상하는 유권자가 좌파동맹에 표를 던졌다"고 해석했다.

1당 지켰지만 체면 구긴 헝가리 오르반

헝가리 극우·민족주의 정당인 피데스(Fidesz)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았다는 평가가 많다. '유럽의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피데스는 44.8% 득표율을 받으며 1당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피데스가 그간 득표율 과반을 차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 결과는 '최악의 성적표'나 다름없다는 게 유럽 전문 언론 유락티브 등의 분석이다. 피데스는 전체 21석 중 11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현재 13석에서 2석 줄어드는 것이다.

특히 정치 신인인 페테르 머저르가 이끄는 중도 성향 정당 티서(Tisza)가 급부상하면서 피데스에 큰 위협으로 자리매김했다. 티서는 29.6% 득표율로 7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인, 양당 정치 체제 돌입... 극우 입지 축소

스페인에서는 보수 성향 국민당(PP)이 약진하고 진보 성향의 집권당인 사회노동자당(PSOE)이 현상을 유지하면서 극우 정당인 복스의 확장을 저지했다. PP는 34.2% 득표율로 전체 61석 중 22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보다 9석 더 확보하는 것이다. PSOE는 20석 확보가 예상된다. 두 정당 총 의석 수는 42석으로 전체 3분의 2에 해당한다.

복스는 9.6% 득표율로 6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의석보다 2석 늘어난 것이기는 하나 지난해 총선 득표율(12.4%)과 비교하면 하락세를 보였다. 마드리드자치대의 정치학 교수인 이그나시오 몰리나는 "페드로 산체스의 좌파 동맹인 수마르 정당도 입지를 잃으면서 지난 10년간 스페인에서 분열됐던 정치가 양당 체제로 복귀하게 됐다"며 "스페인은 두 주요 정당이 모두 친유럽 성향을 지닌 유일한 회원국"이라고 로이터통신에 평가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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