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지도 팔리지도 않는 빌라... "정부가 빌라 전세 죽이기 골몰"

입력
2024.06.12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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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빌라 인허가 전년보다 48% 급감
역전세→경매 악순환 빌라 더 깊은 침체
업계, 전세 폐지론 띄우는 정부에 반발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빌라 밀집 지역. 뉴시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빌라 밀집 지역. 뉴시스

"임대용으로도 외면받는 처지라 신축 빌라 분양이 아예 안 된다고 보면 됩니다. 공사비도 뛰어서 빌라 자체를 짓지도 않으려고 해요."

신축 빌라 분양 중개업무만 20년 가까이 한 김모 대표는 최근 빌라시장 분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예전엔 신혼부부가 빌라를 많이 찾았지만 요즘은 전세사기 이미지 때문에 아예 외면하다시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줄어든 수익을 메우려 저녁엔 배달 일을 뛴다.

과거 서민 주거사다리로 통했던 빌라시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거래나 신규 공급 모두 꽉 막힌 상황으로 정부 대책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이렇다 보니 '전세보다 월세가 합리적'이라며 전세 폐지론을 띄운 국토교통부를 향한 업계 불만도 극에 달했다.

"2, 3년 뒤 새 빌라 씨 마른다"

11일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1~4월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전국)은 1만1,830가구로 1년 전 같은 기간(1만8,990가구)보다 38% 급감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18% 줄어, 비아파트 감소폭이 훨씬 컸다.

같은 기간 서울·수도권은 48% 감소했고, 지방 5대 광역시에선 빌라 인허가 물량이 59.5%나 줄었다. 특히 빌라의 한 축인 연립주택은 지방 5대 광역시와 세종에선 올해 인허가 물량이 아예 없었다. 1~4월 비아파트 착공 실적(1만1,238가구) 역시 1년 전 같은 기간(1만4,962가구)보다 23% 급감했다. 이런 추세면 2, 3년 뒤 신축 빌라 공급이 씨가 마를 거라고 업계는 우려한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빌라 집주인 사이에선 임대용으로 사들인 빌라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한탄이 나올 만큼 기존 빌라시장도 쑥대밭이 됐다. 1분기(1~3월) 전국 비아파트 매매 거래 비중은 24.2%로 2006년 조사 이래 가장 낮았다.

정부의 빌라 전세보증 강화 정책 탓에 올해 서울에서 발생한 연립·다세대 전세 거래 중 절반에 가까운 46%가 역전세인 것으로 추정(다방 분석)된다. 경매시장엔 이렇게 역전세를 맞은 빌라 물량이 넘쳐난다. '역전세→경매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다 보니 회복 추세인 아파트시장과 달리 빌라시장은 더 깊은 침체기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정부는 연초 1·10 대책에서 주택 공급을 늘린다며 향후 2년 동안 새로 짓는 소형 주택을 사면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지만 효과는 거의 '제로(0)' 수준이다. 2년 만에 인허가부터 준공까지 마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세제 혜택도 크지 않아 민간이 빠른 공급에 나설 유인이 약하다. 더구나 기존 빌라·오피스텔은 혜택에서 제외되다 보니 상품성이 더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형 장기임대 도입하자"... 도대체 언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재의 요구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재의 요구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최근 빌라시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련의 현상에 대해 당장 대책이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박상우 장관은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을 전세제도로 보고 연일 '전세 폐지론'을 띄우고 있다. 월세시장으로 재편되면 역전세 같은 부작용도 없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업계는 "잘못된 시장 구조를 바로잡아야지 제도를 인위적으로 없애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냐"고 반박한다. 정부의 전세보증 강화 정책에 따른 인위적인 전셋값 하락으로 시장 왜곡이 발생했는데, 이는 가만두고 당장 시행하기도 어려운 기업형 장기임대만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빌라 집주인 등으로 구성된 주거안정연대는 "국토부가 선진국엔 전세가 없고 월세에 사는 게 일반적이라며 전세 죽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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