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수명은 10년뿐"…소프라노 홍혜경, 이 말 때문에 40년 간 메트에 섰다

입력
2024.06.20 12: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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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홍혜경 인터뷰]
다음 달 3일 예술의전당서 리사이틀
'메트 데뷔 40주년' 음악 여정 담는 무대
오페라 '노르마' '정결한 여신이여' 등 노래
"어울리는 작품으로 오래 무대 서는 게 진정한 성장"

소프라노 홍혜경. 예술의전당 제공

소프라노 홍혜경. 예술의전당 제공


1984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서 성공적으로 데뷔 무대를 마치자마자 캐스팅 디렉터가 찾아왔어요. '10년 후 너를 대신할 소프라노를 지금부터 부지런히 찾아야겠다'고 하더군요. 오페라 가수가 최고의 기량을 오래 유지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였겠지만 큰 충격을 받았죠.

소프라노 홍혜경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메트에서 40년째 활동 중인 소프라노 홍혜경(65)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배역을 까다롭게 고르고, 출연 횟수도 조절한다. 다음 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보컬 마스터 시리즈'란 제목의 리사이틀을 앞둔 그를 전화로 만났다.

고국에서 여는 단독 리사이틀로는 2014년 '메트오페라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 이후 10년 만이다. 미국 뉴욕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홍혜경은 "이렇게 좋은 오페라 출연이 10년이면 끝난다는 캐스팅 디렉터의 말에 무척 슬펐다"고 데뷔 당시를 돌아보며 "내 목소리에 맞는 작품을 잘 소화하고 침착하게 경력을 쌓아 나가는 게 진정한 성장임을 그때부터 생각했다"고 말했다. "캐스팅 디렉터 말처럼 최고로 빛났다가도 3~5년 만에 무대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고도 했다.

이번 공연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지키는 게 노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며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서는 무대이니 만큼 본이 되는 공연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홍혜경은 15세 때 미국으로 가서 1982년 한국인 최초로 메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1984년 모차르트 '티토왕의 자비' 세빌리아 역으로 화려하게 메트에 데뷔했다. 메트에서만 400회 가까이 공연했고 2022년 봄까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에 제5의 하녀 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이제 어느 작품에 출연해도 나보다 먼저 데뷔한 성악가가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홍혜경에게 매니저는 거절을 많이 한다며 '아티스트 노(No)'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잘 가려 선택하고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라서다. "소프라노로서 빛나는 날을 죽이지 말라"며 결혼과 출산을 늦추라는 주변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트 데뷔 직후 결혼해 세 자녀도 낳았다.

홍혜경 주연으로 2019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된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The Metropolitan Opera

홍혜경 주연으로 2019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된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The Metropolitan Opera


홍혜경 주연으로 2019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된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The Metropolitan Opera

홍혜경 주연으로 2019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된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The Metropolitan Opera


작품 거절 많아 '아티스트 노(No)' 별명

소프라노 홍혜경. 예술의전당 제공

소프라노 홍혜경. 예술의전당 제공

홍혜경은 콘서트보다 오페라를 좋아한다. 그는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내 목소리를 써서 드라마를 이어 가고 또 다른 여성으로 변하는 것"이라며 "가발과 메이크업을 벗으면 다시 엄마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좋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외국 무대에서 쌓아 온 음악 경력을 한국 팬과 공유하는 고국 콘서트 무대는 늘 즐겁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의 '정결한 여신이여',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의 '울고 있나요? 고향의 성으로 데려다주세요' 등 "바쁜 일정으로 그간 놓쳤던, 좋아하고 부르고 싶은 아름다운 아리아"를 들려줄 예정이다. 푸치니 '투란도트'의 '주인님, 들어주세요!',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 귀에 익은 곡도 준비했다.

홍혜경이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는 서양 오페라에서 아시아인 성악가가 낯설게 보였던 때였다. 활동이 쉬웠을 리 없다. 그는 "홍혜경이라는 음악가가 아닌 한국인, 아시아인으로 무대에 서면서 어깨가 무거웠다"며 "생활도 인간관계도 잘해야 했기에 더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이제 그는 더 많은 '노(No)'를 하며 보통 사람의 삶을 더 즐길 계획이다. "꼭 하고 싶은 공연만 골라서 하고 손자, 손녀와 지내는 귀한 시간을 더 가지려고 해요. 스트레스 받으며 열심히 뛰었던 과거로는 이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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