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언니들이 계속하는 힘'이 브랜드로...'업력 150년' 1인 출판사 대표들이 뭉쳤다

입력
2024.06.19 11: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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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생 '1인 출판사 대표 5인방' 의기투합
'출판하는 언니들' 브랜드 "시너지 만들고파"
'서울국제도서전' 공동 부스서 독자 만나기로

1인 출판사 대표 모임 '출판하는 언니들'이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박희선 가지 대표, 이현화 혜화1117 대표, 박숙희 메멘토 대표,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임은재 인턴기자

1인 출판사 대표 모임 '출판하는 언니들'이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박희선 가지 대표, 이현화 혜화1117 대표, 박숙희 메멘토 대표,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임은재 인턴기자

"책 만드는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싶었어요. 대단한 부와 명예는 얻지 못했지만 참 만족하면서 꽤 오래 해왔거든요. 이렇게 즐겁게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이현화 혜화1117 대표)

서울에 살면서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여성 출판인들이 뭉쳤다. 거창한 프로젝트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즐겁게 출판일을 하는 언니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란다. '출판하는 언니들'이란 깃발아래 출판사 '가지'의 박희선(52) 대표, '목수책방'의 전은정(52) 대표, '메멘토'의 박숙희(52) 대표, '에디토리얼'의 최지영(52) 대표, 이현화(54) 대표까지 5명. 1990년대에 출판 일을 시작해 2010년에 1인 출판사를 창업한 뒤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1인 출판계 대표 선수들'이다.

'줄기차게' 책 만드는 사람들

출판하는 언니들은 소책자 '언니들의 계속하는 힘' 서문에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한 건 직업? 일상? 애증? 생존? 사랑? 오래 '이곳'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라고 썼다. 임은재 인턴기자

출판하는 언니들은 소책자 '언니들의 계속하는 힘' 서문에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한 건 직업? 일상? 애증? 생존? 사랑? 오래 '이곳'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라고 썼다. 임은재 인턴기자

시작은 친목 모임이었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교열, 홍보, 택배 발송까지 한 사람이 해요. 혼자 일하면 좋은 점도 많지만 외롭거든요. 처음엔 20명 남짓 되는 1인 출판인 모임이었는데 코로나19를 거치며 흐지부지되다가 어느 날 다섯 명이 모이게 된 거예요.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 만나 남산, 한양도성길을 4, 5시간씩 걸으면서 수다를 떨었죠. 체력 기르자고 모인 일이 여기까지 왔네요."(박희선 대표)

전은정 대표가 말을 이었다. "출판인들이 모이면 '출판이 불황이다,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게 싫었어요. 대단한 성공 없이도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묵묵히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옹색하지 않게 생활을 꾸리고 있고요. 생존 자체로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모임 이름을 짓고 "뭔가 같이 해 보자"고 뜻을 모은 건 한두 달 전. 출판계 최대 행사인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이달 26~30일)이 마침 목전이었다. 독자를 만날 더없는 기회이지만 작은 출판사로선 개당 200만 원을 호가하는 부스 비용을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웠던 터. "공동 부스를 차리면 비용은 절감하면서 더 다양한 독자를 만날 수 있잖아요. 다섯 명의 출판 업력으로 뭔가 시너지를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죠."(최지영 대표)

"오래 남고 싶다, 따로 또 같이"

이달 26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는 '출판하는 언니들'의 굿즈로 준비한 소책자. 혜화1117 제공

이달 26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는 '출판하는 언니들'의 굿즈로 준비한 소책자. 혜화1117 제공

다섯 명이 책 만든 세월이 도합 150년, 5개 출판사가 지난 10년간 출판한 책은 216권. 주력 분야가 서로 다르다 보니 5개 출판사가 모인 부스는 종합 출판사 부스를 방불케 할 전망이다. 생태와 여행 관련 책에 주력하는 '가지', 철학과 역사 등 교양서를 만들어온 '메멘토', 식물과 자연 분야 책에 집중하는 '목수책방', 과학과 인문학 분야에 매진한 '에디토리얼', 문화예술 분야 양서를 펴내는 '혜화1117'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책 25종을 선보인다. 이현화 대표는 "출판사마다 골수 독자층이 정해져있는데, 다섯 출판사가 한 공간에서 모이면 자연스레 독자들도 섞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출판하는 언니들'이라는 브랜드가 독자와 출판사가 서로를 발견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박숙희 대표의 제안으로 다섯 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글을 모아 '언니들의 계속하는 힘'이라는 작은 책도 만들었다. 두 손 가득 책을 들고 활보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연두색 표지의 책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다섯 출판사의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에게 굿즈(기념품)로 준다. 그간 제작한 무수한 굿즈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는 고백에 "벌써 2쇄에 들어갔다"는 자랑이 따라왔다. 책자를 납품해 달라는 독립서점도 있고, 주변에서 읽어보고 싶다는 뜻을 비치기도해 재쇄를 확정했다고. "자기 책은 2,000부 팔기 어려운데 이 책은 3,000부가 완판된 거예요. '언니들' 보러 도서전에 꼭 오겠다는 팬도 생겼다니까요. 무엇이 됐든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도서전에서 각자 마음속의 판매 목표를 넘어봐야죠(웃음)."(박숙희 대표)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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