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시 장애연금 피해자 과실 몫, 연금공단이 부담해야"

입력
2024.06.20 17:12
수정
2024.06.20 18: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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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공제 후 상계'로 판례 변경
종전 '상계 후 공제' 입장 폐기하고
건강·산재보험 이어 통일적 법해석
"공단·피해자 간 형평성 도모" 의의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교통사고 피해자를 대신해 국민연금공단(공단)이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피해자에게 지급한 연금 전액이 아닌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액수만 회수할 수 있도록 판례가 변경됐다. 피해자가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도록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거쳐 종전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0일 공단이 교통사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원고승계참가인으로 참가한 사건 상고심에서 공단의 상고를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해 원심을 확정했다. 손해배상청구권의 대위(제3자가 다른 사람의 법률적 지위를 대신해 그가 가진 권리를 얻거나 행사하는 일) 범위가 쟁점이었던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위 범위는 가해자의 손해배상액을 한도로 한 연금 급여액 중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제 후 과실상계설'에 따른 판단이다.

종전 대법원은 '과실상계 후 공제설'을 채택했었다. 두 가지 입장 모두 가해자가 배상해야 하는 총액은 변함이 없지만, 어떤 입장인지에 따라 피해자와 공단에 지급되는 금액이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100만 원의 손해를 입었고 이 중 피해자 과실비율이 30%인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피해자에게 40만 원을 장애연금으로 지급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상계 후 공제설'을 적용하면, 100만 원에서 피해자 책임비율 30%를 먼저 상계한 70만 원 중 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40만 원을 뺀 30만 원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제 후 상계설'을 취했을 땐 손해 100만 원에서 공단으로부터 받은 40만 원을 먼저 공제하고 남은 60만 원 중 피해자 책임비율 30%를 계산해 42만 원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공단은 '상계 후 공제설'을 적용했을 때보다 적은 비율만 가해자에게 대위 청구하게 된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사건 원심은 '공제 후 과실상계설' 입장에서 판단했다. 최근 건강보험 등 관련 산정 방식이 공제 후 상계설로 바뀐 점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공단은 종전의 '상계 후 공제설'에 따라 장애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상고해 대법 전원합의체 판단을 받게 됐다.

결국 이번 대법원 판결로 공단은 피해자의 책임비율만큼 공제하게 됐다. 대법원은 "(공단의) 재정 확보를 위해 피해자에게 가장 불리한 해석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금 급여액 중 피해자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선 "공단이 피해자를 위해 부담할 비용이자 피해자가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이익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민건강보험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계산방식에 대한 판례가 변경된 점도 고려한 판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주요 사회보험인 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등에서 대위 범위에 관해 통일적인 법 해석이 이뤄진 것"이라면서 "국민연금의 재산권적 성격과 사회보험 성격을 조화롭게 고려해 공단과 피해자 사이 형평을 도모하고자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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