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 시초가 모세라고? 루이지애나 교실에 십계명 걸린다

입력
2024.06.20 17:00
수정
2024.06.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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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장악 주의회·정부 의무화 입법
“종교 강요” 위헌 논란… “역사에 뿌리”

지난해 11월 7일 미국 오하이오주 체노베스 인근 고속도로의 십계명 광고판을 작업자들이 다시 도색하고 있다. 체노베스=AP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7일 미국 오하이오주 체노베스 인근 고속도로의 십계명 광고판을 작업자들이 다시 도색하고 있다. 체노베스=AP 연합뉴스

“법치주의를 존중하려면 처음 법을 만든 사람부터 알아야 한다. 그는 모세다.”

미국 루이지애나주(州)의 공화당 소속 주지사인 제프 랜드리는 19일(현지 시간) 모든 주 공립학교 교실에 십계명이 걸리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에 서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십계명은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열 가지 계율로, 살인이나 도둑질,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호와에게서 이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것으로 기록된 인물이 모세다.

지난달 공화당이 과반인 주의회를 통과한 해당 법안이 이날 발효됨에 따라 유치원부터 주립대까지 모든 루이지애나주 공립학교는 교실·강의실에 ‘크고 읽기 쉬운 글꼴’로 적힌 최소 가로 28㎝, 세로 36㎝ 포스터 크기 십계명을 내년 1월까지 게시해야 한다. 포스터 제작 비용은 주 정부 예산이 아닌 학교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980년 대법원이 비슷한 내용의 켄터키 주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뒤 교실에 십계명을 걸도록 법으로 요구한 주는 루이지애나가 처음이다. 오클라호마와 텍사스, 유타 등 다른 주에서도 십계명 게시 의무화 입법이 추진됐지만 불발했다.

‘미국 시민 자유 연맹’, ‘정교 분리를 위한 미국인 연합’,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이 법이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당장 소송을 예고했다. 미국 수정헌법 1조에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방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단체들은 이날 성명에서 “정치인들은 공립학교 학생 및 가족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종교적 교리를 강요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십계명을 종교 문서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법을 지지하는 편의 반박이다.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소속 도디 호튼 주 하원의원은 법안 서명식에서 “십계명은 역사에 뿌리내린 도덕적 규범”이라고 말했다. 미국 법 체계의 토대가 십계명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NYT는 전했다.

이들은 소송전도 불리하지 않다고 믿는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인 대법원이 이번에는 신앙의 적극적 표현에 우호적인 판결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NYT는 “이번 입법으로 소송을 유도해 대법원까지 끌고 가 본다는 게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목표”라고 보도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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