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애환 장성광업소 역사 속으로… “삶의 터전 찾아 떠나야 하나” 막막

입력
2024.06.28 04:30
12면
구독

다음달 1일 광업권 말소 공식 폐광
한때 228만 생산 국내 최대 탄광
대체산업은 아직 대규모 실직 우려
300억 지원 고용위기지역 지정 사활

광업권 말소를 1주일 앞둔 24일 태백 장성광업소 청사가 한산한 모습이다. 박은성 기자

광업권 말소를 1주일 앞둔 24일 태백 장성광업소 청사가 한산한 모습이다. 박은성 기자

지난 24일 오후 강원 태백시 장성동 대한석탄공사 태백 장성광업소. 직원용 승용차 1대가 서 있을 뿐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갱내 보수, 경비, 목욕탕 운영 등을 맡았던 협력업체 사무실들도 굳게 잠겨 적막감이 흘렀다. 장성광업소는 다음달 1일 정식 폐광(광업권 말소)되지만 채탄작업은 지난 3월 29일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사무실에서 300m 떨어진 갱도 출입문은 폐쇄됐다. 한 때 직원이 5,200명을 넘어 흥성거렸던 탄광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내 최대 규모인 장성광업소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운영을 시작, 87년간 석탄 9,400만 톤을 국내 가정과 산업현장에 공급했다. 1979년엔 채탄량이 228만 톤에 육박, 국내 전체 생산량의 10%를 넘었다. 광부들은 ‘산업전사’라는 자부심으로 지하 1,000m 아래로 내려가 국가경제의 중흥을 이끌었다. 하지만 석탄이 석유와 가스에 밀려 경제성을 잃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쇠락의 길로 들어섰고 장성광업소도 폐광을 피하지 못했다.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국내 탄광은 삼척 도계광업소와 삼척 경동탄광만 남는다. 도계광업소도 내년 6월 문을 닫는다.

2015년 1월 태백 장성광업소 직원들이 채탄작업을 위해 작업장으로 향하고 있다. 박병문 사진작가 제공

2015년 1월 태백 장성광업소 직원들이 채탄작업을 위해 작업장으로 향하고 있다. 박병문 사진작가 제공

장성광업소의 폐광이 태백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당장 탄광에 의지해 생계를 꾸려온 415명이 직장을 잃는다. 3년 전 폐광 계획이 전해진 뒤 장성중앙시장 점포 20여곳이 문을 닫았다. 경기가 좋을 때 100여개에 달하던 점포는 50곳 이하로 줄었다.

한때 12만 명에 달하던 태백시 인구가 지난해 4만 명이 붕괴될 정도로 폐광의 후폭풍은 크지만 석탄산업을 대체할 새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올해 초 강원연구원은 연구용역을 통해 장성광업소 폐업 이후 5년 간 3조 3,000억 원의 경제적 피해를 예상했다. 태백의 지역 내 총생산(GRDP)의 9.6%가 증발하는 셈이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40~50대 광부들은 지게차 운전과 미장 등 기술을 익히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눈치다. 일자리를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길지를 고민하는 광부들도 많다. 24년간 장성광업소에서 채탄광부로 일했던 김영문(48)씨는 두달 전부터 스카이차량(고가사다리차) 운전을 배우고 있다. 폐광 때 받은 전업준비금, 특별위로금 등으로 키즈카페를 인수해 급한대로 생계를 이어갈 생각이지만, 고정수입이 없어져 커가는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김씨는 "기술을 배운다고 해도 침체된 지역에 일감이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20년 넘게 폐광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왔음에도 정부 차원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31년 경력의 광부인 홍성현(53)씨는 “1999년부터 석탄공사 민영화와 폐광 얘기가 나왔음에도 재취업과 대체산업 유치 등 정부차원의 실질적인 대책이 없었다”며 “부랴부랴 대책이 나오기는 하지만 와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탄광지역에서 활동하는 박병문(65) 사진작가는 “오랜기간 지역경제를 지탱했던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게 됐으나 이를 대체할 산업이 없어 대규모 실직,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로 도시 전체가 무거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음달 1일 광업권 말소를 앞둔 태백 장성광업소 탈의실이 썰렁하다. 박병문 사진작가 제공

다음달 1일 광업권 말소를 앞둔 태백 장성광업소 탈의실이 썰렁하다. 박병문 사진작가 제공

태백시는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황연동 일원에 수용 정원 1,500명, 직원 500명 규모 교정시설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반대급부는 없지만 교정시설이라도 유치하면 "상권이라도 살릴 수 있을까"해서 태백시가 법무부에 요청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강원도와 태백시가 기대하는 것은 '고용위기지역' 지정이다. 정부 조사단은 다음 달 1일부터 태백시에서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결정하기 위한 현지실사에 나선다.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 구직급여와 △생활안정자금 △전직·창업지원 △고용촉진지원금 △맞춤형일자리사업 등 연간 최대 국비 300억 원을 지원 받는다. 강원도와 태백시는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발판으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수조원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도 추진 중이다. 태백시는 장성광업소 부지에 청정메탄올 제조시설 조성을 비롯해 △철암 물류센터 △핵심광물국가산업단지 △실직 근로자와 주민을 위한 주거공간 등 폐광에 따른 충격파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백= 박은성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