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D '급체'했나... 집행률 50% 미만 사업 수두룩

입력
2024.06.28 12:37
수정
2024.06.28 14:5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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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 사업 중 12개 집행률 50% 미만
황정아 의원 “준비 없이 예산만 늘려“
과기정통부 “하반기에 집행 비중 커”
연구현장 “해외 협력은 내실이 중요”

박상욱 과학기술수석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25년도 연구개발 예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상욱 과학기술수석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25년도 연구개발 예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크게 증액해 논란을 불렀던 '글로벌 R&D' 사업들이 실제 집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R&D 예산은 정부가 내년에도 늘리겠다고 밝힌 만큼, 내실 있는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과기정통부가 관리하는 글로벌 R&D 세부사업 35개 중 12개 사업에서 실제 글로벌 협력과 관련한 내역사업들의 실집행률이 지난 20일 기준 50% 미만으로 집계됐다. R&D는 단위사업→세부사업→내역사업 순으로 세분화된다. 문제가 된 내역사업들에 배정된 예산은 1,346억3,700만 원인데, 실제로 집행된 것은 311억1,940만 원(23.2%)이었다.

황 의원은 "한 해의 절반이 흘렀는데 집행률이 이렇게 저조한 것은 글로벌 R&D 예산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급격히 확대한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R&D 예산은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국제협력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밝힌 뒤, 2023년 5,075억 원에서 올해 1조8,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전체 R&D 예산이 10% 넘게 삭감됐던 것과 대비된다(관련기사 ☞ 과기부 지침에 두 달 새 글로벌 R&D 예산 3.5배... "돈도 기술도 흘러 나갈라").

황 의원은 "내실화 없이 '글로벌' 단어만 붙인 R&D 예산 증액에 현장은 혼란 그 자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연구자들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조변석개 정책이 아니라,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R&D 지원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하반기에 실시되는 사업들이 있어서 통계가 낮게 집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예산 편성 단계에서 이미 하반기에 실시하기로 한 사업들이 많다. 예산 집행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황 의원은 "하반기에 실시하기로 한 사업 비중이 큰 것 자체부터가 예산을 졸속으로 편성했다는 증거"라며 "예산의 80% 가까운 돈을 몇 개월 동안 몰아 써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글로벌 R&D 예산은 내년에도 늘어나 총 2조1,000억 원이 배정될 전망이다. 연구 현장에서는 내실 있게 예산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의 한 중견 연구자는 "글로벌 협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번처럼 급작스러운 추진은 오히려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해외에서 연구에 꼭 맞는 협력 상대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당장의 연구비가 급하니 우리가 상대 연구자와 대등한 관계가 아닌 '갑을관계'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장도 "글로벌 R&D 연구는 연구자들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것인데, 지나치게 관 주도로 이뤄져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지혜 기자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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