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심리적 문제 이겨낸 유명 작가들... 그들의 개인전에 앞서 알아야 할 이것

입력
2024.07.01 17: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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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겐지로와 라티파 에샤크, 서울서 개인전
'논어'와 '알바트로스', 두 개인전을 읽는 열쇳말

오카자키 겐지로의 첫 한국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오카자키 겐지로의 첫 한국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일본의 예술가 오카자키 겐지로(69)와 스위스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모로코 출신 설치미술가 라티파 에샤크(50)는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떨치며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건축, 로봇공학, 의상, 미술비평 등 경계를 넘나들며 4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오카자키의 작품은 아트페어에 나오는 족족 완판된다. 에샤크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스위스 국가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전시를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개인전이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각각 열리고 있다. 오카자키의 ‘Form at now and later(형이의 이금이후)’는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이며, 에샤크의 ‘Les albatros(알바트로스)’는 그의 첫 아시아 개인전이다. 전시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두 작가를 지난달 27일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났다.

① 오카자키 겐지로: 논어 '이금이후'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예술가 오카자키 겐지로(왼쪽)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이혜미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예술가 오카자키 겐지로(왼쪽)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이혜미 기자

“2년 전 ‘운이 좋게도’ 제가 뇌경색에 걸렸어요. 오른쪽 팔다리를 아예 못 쓰게 됐고 이대로는 누워서 생활을 하게 되겠구나 싶었죠. 그때 이 논어의 문장 ‘이금이후(而今而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카자키는 오른쪽 다리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지팡이를 짚은 채 유쾌하고 명랑한 말투로 투병을 ‘행운’이라고 말했다. 가로 200~300㎝, 세로 200㎝에 달하는 대형 회화 작품은 대부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제작한 신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던 그는 어떻게 2년 만에 신작을 들고 복귀할 수 있었을까.

전시 제목에도 포함된 ‘이금이후’는 ‘지금 이후’를 일컫는 논어 구절이다. 뇌의 일부가 기능하지 않아 좌절하고 있을 때 오카자키는 이 구절을 떠올렸다. “불가능하다거나 슬럼프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재활을 통해 다시 조형을 하게 된다면 죽은 뇌의 일부도 다시 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너무나 쉽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예전의 15배 속도로 작업 활동을 해요.”

절망 속에서 논어 구절이 그를 건져낸 순간, 공교롭게도 페이스갤러리에서 전시 제안이 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투병 이후 신작뿐 아니라 1983년에서 1993년에 걸쳐 만든 조각 작업 등 20여 점을 선보인다. 시간, 공간, 존재의 광활한 연속성을 독자적인 추상 언어로 탐구해 온 작가의 40여 년을 압축적으로 엿볼 수 있는 전시다.

② 라티파 에샤크 : 샤를 보들레르 '알바트로스'

라티파 에샤크의 개인전 'Les Albatros'가 열리고 있는 페이스갤러리의 전시 공간은 사방을 검은 천으로 막아 외부의 빛을 차단했다. 신작 회화 5점이 직물을 늘어트린 형태로 놓여 있다. 페이스갤러리 제공

라티파 에샤크의 개인전 'Les Albatros'가 열리고 있는 페이스갤러리의 전시 공간은 사방을 검은 천으로 막아 외부의 빛을 차단했다. 신작 회화 5점이 직물을 늘어트린 형태로 놓여 있다. 페이스갤러리 제공

검은 암막 커튼으로 외부의 빛을 모두 차단해 어두컴컴한 갤러리 1층에는 에샤크의 신작 회화 다섯 점이 ‘늘어져 있다’. 가로 8m, 세로 3m의 초대형 작품은 마치 커튼 같은 천을 불규칙하게 걸어둔 것처럼 설치돼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L’Albatros’ 5점은 미국 휴스턴에서 마주한 버지니아 참나무를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

전시의 제목부터 작품 제목까지 모두 ‘알바트로스’다. 최근까지 심리적 문제로 창작을 하기 어려운 상태였던 에샤크는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에서 힘을 얻어 전시를 준비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알바트로스는 천상의 새이지만, 육지로 끌려 내려온 뒤 그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학대와 조롱을 받는다. “공중에 높이 있을 때는 완벽해 보였지만 땅에 내려오면 그것이 불안정하다는 것, 예술가도 한 명의 인간이기에 실패와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을 작품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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