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밖이 안전해"... 중국 AI 스타트업들 '싱가포르 워싱'

입력
2024.07.0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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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칩 수급, 투자 자본 접근 등 위해
중국 AI 기업들 탈중국→싱가포르행
"싱가포르, '아시아 AI 허브'로 부상"

랜드마크 마리나베이샌즈 등이 보이는 싱가포르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랜드마크 마리나베이샌즈 등이 보이는 싱가포르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2년 전 중국 항저우에 설립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탭컷(Tabcut)은 초반부터 투자금 부족 등의 한계에 부닥쳤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창업자 두 명이 택한 것은 회사 이전. 지난 3월 탭컷은 항저우에서 남서쪽 4,000㎞ 거리인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겼다.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우천송은 "자본 유입이 급격히 줄고 있는 곳보다는 풍부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통신은 "(자본 접근성 못지않게) AI 스타트업에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에서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구입이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이는 미국의 통제 탓에 중국에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싱가포르가 중국 AI 스타트업들의 선호 행선지로 떠오르고 있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원래부터 중국계 거주 비율이 높은 국가여서 많은 중국 기업을 유치해 왔지만, 특히 AI 기업들의 싱가포르행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통신은 "싱가포르에 거점을 두는 것은 기업이 중국과 거리를 벌리는 방식 중 하나"라며 흔히 '싱가포르 워싱'으로 일컬어진다고 전했다. 미국처럼 중국과 대립 관계인 국가의 규제를 피하고, 더 많은 나라의 고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에서 실질적으로는 중국 기업에 가깝지만 '싱가포르 기업'으로 이미지를 세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AI 붐 이전에도 중국 기업들의 대피처로 활용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 틱톡의 모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는 틱톡 본사를 중국이 아닌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미국 10대에게 큰 인기를 끌며 아마존의 명성을 위협하고 있는 초저가 의류 쇼핑몰 '쉬인'도 2021년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본사를 이전했다.

오픈AI는 모델 접근 차단... 중국 떠나는 이유

그러나 AI 기업들에 싱가포르는 이미지 세탁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블룸버그는 평했다. 엔비디아의 칩 수급이 가능하다는 게 최대 이점으로 꼽힌다. 고품질 AI 모델 개발을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이 필요한데,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칩 수출 통제 탓에 중국에서는 정상적인 구매가 불가능하다. 칩뿐만이 아니다. 오픈AI는 이달부터 중국 개발자들의 자사 AI 모델 접속을 차단하기로 했다. 중국 안에 있으면 기술력이 가장 앞선 미국 기업들의 AI 모델에 접근조차 할 수가 없게 된 셈이다.

인공지능(AI)을 형상화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을 형상화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중국의 'AI 규제'가 다른 국가에 비해 엄격하다는 점도 탈(脫)중국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중국은 AI 기업이 소비자 대상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 정부에 알고리즘을 등록하도록 하는 정책을 지난 7월 도입했다. 반대로 싱가포르는 AI 규제가 보다 느슨하고, 회사 설립도 쉽다고 한다.

싱가포르 내 AI 기업, 벌써 1,100곳

지난해 말 기준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AI 스타트업은 1,1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별 비율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국계가 상당수일 것으로 블룸버그는 추정했다.

싱가포르는 중국 기업들의 잇단 이전을 발판 삼아 아예 '아시아의 AI 허브'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위원회의 찬이밍 부사장은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 활발한 다국적 기업 네트워크를 갖춘 싱가포르는 기업과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가 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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