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견 키우려면 허가받으라더니… 실행 준비조차 안 됐다

입력
2024.07.04 14:00
수정
2024.07.0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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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시행 2개월 지났지만… 정부 여전히 "준비기간 필요"


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지내고 있는 핏불 믹스견 '애기'. 애기 보호자 제공

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지내고 있는 핏불 믹스견 '애기'. 애기 보호자 제공

맹견사육허가제기질평가제가 시행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이를 평가할 평가위원회조차 확정된 곳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두 제도는 개물림 사고의 예방과 감소를 위해 도입돼 4월 27일부터 시행 중이다.

4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동물권 등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별로 기질평가위원을 위촉하는 등 기질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곳은 없다. 본지가 2일 기준 농식품부에 확정된 기질평가위원회(지역)와 전체 기질평가위원회 수 등을 질의했지만 "구성하고 있다"는 답변만 받았다.

맹견으로 지정된 5종(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 로트와일러)은 올해 10월 26일까지 기질평가를 통과하고 시·도지사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기를 수 있는데, 아직 평가 일정조차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전국에 등록된 맹견 수는 2,932마리며 지역별로는 경기(857마리), 경남(360마리), 서울(214마리), 부산 전북(각 208마리) 순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맹견으로 지정한 5종 중 하나인 도사견. 전문가들은 위험한 개를 종이 아니라 개체별 기질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맹견으로 지정한 5종 중 하나인 도사견. 전문가들은 위험한 개를 종이 아니라 개체별 기질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단체들은 관련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를 급하게 추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기질평가위원회는 수의사, 반려동물행동지도사(트레이너), 동물복지정책에 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다고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사람 등 3명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해야 하는데 관련 전문가가 부족해 평가위원회를 꾸리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위원의 중복 위촉까지 허용한 상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제도 도입 당시 개물림사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의식해 정부가 부담을 느끼면서 급하게 추진한 측면이 있고 관련 전문가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법만 만들어 놓고 실행이 뒤따르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현 기질평가 기준으로 공격성 평가될까

견종으로 구분해 맹견을 지정하고,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 공격성을 촉발하는 식의 평가 방법에 대한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본보 5월 30일 자 보도)돼 왔다. 농식품부는 기질평가에 대해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접근 공격성 △놀람 촉발 △두려움 촉발 △흥분 촉발 △사회적 공격성에서 맹견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12개 항목을 테스트해 직접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12개 항목에는 △입마개 착용 △줄에 묶인 상태에서 평가자 접근하기 △유모차와 벨이 울리는 킥보드 지나가기 △낯선 사람이 택배상자를 떨어뜨리기 △낯선 사람과 작은 개 만나기 △공으로 유혹하기 등이 포함돼 있다.

정부가 정한 맹견 중 하나인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가 입마개를 하고 있는 모습. 현행법에서도 맹견은 외출 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정한 맹견 중 하나인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가 입마개를 하고 있는 모습. 현행법에서도 맹견은 외출 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알렉스 트레이너(KPA 코리아 매니저)는 "정부가 내놓은 기질평가 내용을 보면 해외의 치료견 테스트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며 "공격성을 유발하는 이 같은 방식으로는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정윤 수의사(올리브동물병원장)도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데 단편적 항목만을 나열해서 평가하는 방식은 시작부터 동물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예컨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평가를 한다고 하면 보호자가 다른 지자체로 이동 시 이동지역에서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며 "기본적 정보조차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만 시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대부분 8월, 늦어도 9월에는 평가 시작"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시행이 늦어지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제도 시행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임영조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장은 "지자체별로 한두 달가량 준비기간이 필요한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달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지역은 8월, 늦어도 9월부터 기질평가를 실시해 마감 기한 전에는 다 완료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가위원을 찾기 어렵다는 지자체의 경우 전문가 정보를 안내해 드렸다"며 "기질평가 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관리 매뉴얼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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